
어느 날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5월의 봄인데, 제주도에 가면 밤중에 풀밭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방송자료로 나가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동시녹음이 아니면 영상에 따로 소리 입히는 작업이 이루어지기에 온 연락이었다. 그렇다면 그맘때 밤중에는 어떤 풀벌레 소리가 어울릴까? 우리의 관념 속에 가을 풀벌레 소리는 익숙하지만, 어쩐지 봄밤은 왠지 어색하고 낯선 것 같다. 이때 들을 만한 소리의 주인공은 꼬마여치베짱이가 대표적이다. ‘찌이-’하고 단순하지만 볼륨감 있는 소리는 마치 고압선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
꼬마여치베짱이는 1999년 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표본실을 방문했을 때 처음 발견했다. 머리가 뾰족한 여치류를 이리저리 관찰하며 핀을 옮겨 꽂다 보니, 갈색의 통통한 체형에 유난히 뒷다리가 짧은 표본을 발견했다. 표본 아랫면을 뒤집어 보니 입 주변과 가슴판이 짙은 검정 색깔인 특징도 감지했다. 2000년 5월, 남부지방 출장 기회가 왔다. 전남 영암 월출산, 같은 산은 아니었지만 기대해 볼 만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밤중에 도착한 월출산에는 ‘찌이이-’하는 강도 높은 풀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2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들리는 선명한 울음소리를 듣고 채집한 녀석은 내가 찾던 바로 그 종의 수컷이었다.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어 여러 마리의 수컷과 함께 근처에 있던 암컷도 채집했다. 이후 제주도와 서해안에서도 이 종을 채집하여 2002년 미기록종 ‘꼬마여치베짱이’로 발표하게 되었다.
처음 이 종이 알려진 곳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이다. 상당히 남쪽에 사는 종류가 어떻게 한반도까지 오게 되었을까? 한반도 주변의 과거 지도와 해류의 영향을 고려하면 남방계 곤충들은 한반도 남서부 지방을 북방한계선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풀벌레 소리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의 봄밤에 뚜렷하게 들리는 꼬마여치베짱이의 울음소리는 무척 인상적이다.
김태우·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환경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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