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람들의 인종차별 기준은 경제적인 면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 무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지만 미국 무대에서 고위급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면 또 태도가 변하고.” (이주노동자 A씨)
“길을 가는데 어떤 아줌마가 내 히잡을 벗겼다. 한 번은 길에서, 한 번은 마트에서.” (난민 B씨)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상당수가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제정은 물론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인식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의뢰해 진행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를 통해 이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7월22일부터 9월5일까지 이주민 3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 등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조사 결과 이주민 응답자 중 68.4%가 한국에 대체로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한국어 능력(62.3%), 국적(59.7%)을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답한 비율이 인종(44.7%)이나 민족(47.7%), 피부색(24.3%)보다 높았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경험한 이주민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8.9%가 차별을 당했을 때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이주민이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28.5%), ‘나의 행동을 뒤돌아보았다’(28.5%)는 응답처럼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경우도 있었다.

보고서는 이를 철폐하기 위한 법제화 방안으로 ▲인종차별의 정의·유형 및 기본 정책 수립 ▲인종차별 행위의 중지 및 피해의 구제 ▲증오범죄와 인종차별 선동의 범죄화 ▲종차별적 혐오표현의 규제 ▲인종주의의 해소 및 다양성 존중의 증진 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법제화 방안은 단순히 전통적인 의미의 ‘인종’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를 범죄화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며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증진,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민의식 향상이 필요하며 모든 형태의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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