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구 남영역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죽을 맛이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되는데 코로나19까지 닥쳐 매출이 엉망이다. 평소의 30%도 채 나오지 않는다. 지출부터 줄이고자 아르바이트생을 1명만 남겼는데도 지난달 임대료와 인건비도 건지지 못했다. 고이 모아놓은 비상금으로 겨우 고비를 넘겼으나 앞으로가 막막하다.
김씨는 10일 “코로나19로 피해 본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지원 프로그램이 있다길래 신청했지만 하세월”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출이 안 되면 당장 장사를 접게 생겼는데 나 같은 소상공인 신청이 밀려 심사가 기존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용이 괜찮으면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이라도 해보겠는데 이미 대출한도가 꽉 차서 그것도 안 된다. 부동산 담보도 없고…”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가 빨리 좀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코로나19 금융지원과 관련해 돈을 빌려주는 금융사와 빌려야 하는 현장의 ‘온도차’가 너무 크다. 정부와 금융사는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대상 긴급경영안정자금이나 특별 대출 지원프로그램 등에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보증 심사가 너무 오래 걸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시중은행의 금융지원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소상공인은 시중은행이 마련한 특별 대출한도 안에서 돈을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다. 문제는 신용도 7등급 이하의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이 긴급경영안정자금 등을 대출받으려면 절차가 까다롭다. 먼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어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서’를 받아야만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을 넘을 수 있다.

금융지원의 온도차가 발생하는 곳은 보증서 발급 단계다. 코로나19 탓에 자금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져 대출을 생각하는 소상공인은 부동산 담보나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증부 대출에 목매달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보증서 발급 문의가 폭주하면서 통상 1, 2주 걸리던 발급기간이 최근 두 달가량으로 확 늘었다. 심사 기준이 최소화되더라도 인력의 한계상 처리 속도는 평소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일부 소상공인은 코로나19 사태 기간만이라도 한시적으로 ‘선 대출, 후 심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이모(41)씨는 “영세 소상공인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그는 “사경을 헤매는 사람 앞에 두 달 정도 걸리는 심사는 사실상 죽으라는 얘기다. 대출부터 실행해 살려놓는 게 먼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원회도 정부가 코로나19 금융지원을 위해 11조원이 넘는 돈 보따리를 풀었지만 대출 승인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에 따라 지원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피해 기업의 자금 신청이 지역신용보증재단 등 보증부 대출에 70∼90%씩 쏠리면서 보증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해 은행에 위탁할 지역신보의 업무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지역신보는 점포수가 제한됐고 점포당 인원도 10명 이내라 최근처럼 신청이 폭주하면 감당이 힘들다”며 “현재 은행의 업무 범위를 보증심사까지 넓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대출 서류상 기본사항을 전산화하는 등 은행·지역신보 간 시스템 연계를 추진한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금융지원에서 신한은행의 ‘완화한 여신심사 적용 지침’은 모범사례로 꼽혔다. 신한은행은 신용등급을 3단계 상향조정한 수준으로 금리한도 등을 결정하고 4개월 내 만기도래 대출의 경우 심사 없이 일괄적으로 6개월 만기 연장을 하며 원칙적으로 지점장 전결을 통해 심사기간을 단축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포용적 금융’이라는 기치 아래 코로나19 피해극복을 위해 기존의 여신 지원 관행에서 벗어나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남정훈·송은아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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