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압구정 때문에 추락한 한명회

겸재 정선이 그린 압구정

오래전에 ‘모두 이 손 안에 있습니다’라는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주인공은 조선 최고의 권력가 한명회. 현재 강남의 중심지 중 한 곳인 압구정동이 한명회에게서 유래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명회는 세조를 왕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정난공신 1등에 책봉되고, 세조로부터 ‘나의 제갈량’이란 칭송까지 받았다. 그의 위세는 사위 성종이 왕이 되면서 더욱 커졌다. 최고 권력가로 있던 1476년(성종 7) 한명회는 한강가에 압구정(狎鷗亭)이란 정자를 지었다. ‘압구정’이란 이름은 명나라 사신인 예겸이 지어준 것으로서 ‘압구’는 ‘갈매기를 가까이 한다’는 뜻이다. 갈매기를 벗하며 유유자적하게 말년을 보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한강가에는 왕실 소유의 희우정이나 제천정 등만 있었음을 고려하면, 최고의 조망을 가진 곳에 신하의 신분으로 정자를 건립한 것은 분명 파격이었다.

그러나 압구정은 한명회의 화려했던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1481년(성종 12) 6월의 일이었다. 압구정의 명성이 중국까지 알려지면서 조선을 방문한 사신이 성종을 통해 압구정 관람을 청하였다. 이에 한명회는 장소가 좁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의 뜻을 보였고, 성종은 아무리 장인이라지만 왕의 뜻을 거역하는 한명회의 태도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더구나 한명회는 왕실에서 쓰는 용봉(龍鳳)이 새겨진 천막을 사용하게 해 준다면 잔치를 벌이겠다는 제안까지 하면서 성종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한명회에 대한 탄핵도 이어졌다. 결국 성종은 제천정에서 잔치를 치르고, 희우정과 제천정을 제외한 정자는 모두 없애겠다는 강경한 선언을 했다. 뒤늦게 한명회가 수습에 나섰지만, 성종은 왕명을 거부한 한명회의 국문을 지시하고 파직시켰다. 최고 권력가의 추락은 이처럼 한순간이었다. 현재는 압구정동 일대의 아파트촌으로 기억이 되는 압구정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