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
중세의 성 같은 돌담 집
몇 길 높이 담벼락에 시 한 편 걸려있다
겨울 담쟁이가 손으로 발로
온몸 밀어 올리며 쓴 육필 시화전이다
실핏줄로 겨우 이어붙인 아찔한
문장, 빛나는 수사修辭가 없다
여름내 펼치던 구호 모두 떼어내고
생활전선에 바짝 붙어선 동사뿐이다
허리춤에 매달린 끝물 열매 몇 개
그마저도 새들에게 털리고
알몸의 시는 겨울벽화로 붙어 있다
CCTV가 곳곳 눈 치켜 뜬 성채들
누구는 좌, 누구는 우를 읽고 가지만
그러든 말든 벼랑 끝에 붙어서
기어이 제 목소리를 펼쳐 보이는
겨울 담쟁이의 시,
얼고 부르튼 손으로
세한歲寒의 계절을 움켜쥐고 있다
-신작시집 ‘꽃의 정치’(지혜)에서
●이영식 시인 약력
△경기도 이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공갈빵이 먹고 싶다’ ‘희망온도’ ‘휴’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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