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효, 충, 예의 유교 정신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나라다. 시대가 변해서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해도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의 나라에서 잊어버린 효, 충, 예의 마음을 여전히 느낄 수가 있다. 어른에게 예를 갖추고, 효도하고 인사를 잘하는 모습은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에서는 9월 셋째주 월요일인 경로의 날이 국가 휴무일로 지정돼 있다. 오랜 시간 사회에 이바지한 노인을 경애하고 장수를 축하하는 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국경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노인을 경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유교 정신이 생활의 보이지 않은 규범이 되어 있다.
일본에서 유교는 불교보다 이른 시기에 도래해 왔다. 그런데 국가적인 종교로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다만 대륙의 선진학문으로 취급되어 특히 도쿠가와 시대 때 유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유교는 전란의 세상보다 천하가 안정된 후에 인심을 안정시키고 예의를 익히는 사상으로 매우 유용한 가르침이다. 유교 경전에는 현대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만한 명언이 가득 적혀 있다.

유교의 가르침은 참 훌륭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훌륭한 교리의 부산물 또한 같이 남겨져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연장자를 높이 공경하는 나머지 젊은 사람들을 경시하거나 여성 멸시와 혈연 우선 등의 폐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에서 부모의 간섭이 강하다고 느끼는 것도 유교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자기 스스로가 가고 싶은 길을 부모가 아예 막아버리고 앞으로의 길을 정해버리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는 장면이 아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자식에게는 가장 좋고, 고생하지 않는 길을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공통된 심정이다. 아이들이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부모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부모의 의견을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의 의견과 맞지 않는다면 부모는 언제나 아이에게 져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경제가 불안하고 불경기일 때에는 모두 안정된 생활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경쟁률이 치열한 공무원 시험을 치르기 위해 많은 젊은 사람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경제적인 고생을 잘 아는 부모들은 자녀가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라고 젊은 사람들도 자신의 미래 확보를 위해 이러한 분위기에 따르고 있다. 다만 안정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을 선택해버린다면 분명 아쉽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젊었을 때는 새로운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도 의욕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도전하는 것보다 먼저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도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도전해서 실패하고 낙담하는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먼 미래를 본다면 아이들에게도 국가에도 젊은이의 도전은 크나큰 재산이 될 것이다.
젊은이들은 대단한 가능성과 능력이 있다. 단지 경험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의 해야 하는 일이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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