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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우한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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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12 23:17:24 수정 : 2020-02-12 23: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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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바이러스 전염 위험 / 신종 코로나 사태로 공포 체감 / 한국, 기후변화에 안일·피상적 / ‘사전경고’ 무시 땐 재난의 비극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한 여인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원인을 알기 전에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죽음에 이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마른기침, 고열, 발작, 뇌출혈과 같은 증상을 보이다 죽어간다. 그 숫자는 국경을 넘어 시카고, 런던, 파리, 홍콩으로 확산된다. 바이러스가 직접 또는 간접 접촉으로 전염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공포심에 떨게 되고 일상은 파괴된다. 한편 전염을 막을 백신과 그것을 누가 먼저 갖느냐에 대한 의혹이 커지는 와중에 진실이 은폐됐다고 주장하는 저널리스트가 촉발한 음모론은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퍼져 나간다.

지현영 변호사

한 의사가 도심지의 어느 병원에서 중증 바이러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고, 동료의사 7명과 함께 SNS를 통해 이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공안이 들이닥쳐 8인의 의사들을 끌고 간다. 진실은 은폐되고,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누적 사망자가 1016명에 이를 때까지 원인도 대책도 없다. 최초 발생지에서 외국인들은 자국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탈출하고 도시는 교통이 차단되며 봉쇄된다. 한편 고발하고자 했던 의사가 감염으로 죽음을 맞이하자 시민들은 당국을 향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불복종 시위를 한다. 그러나 상황을 알리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차례로 실종된다.

앞의 내용은 영화 컨테이전의 공식 줄거리를 편집한 것이고, 뒤의 내용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재구성한 것이다. 어느 것이 영화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분별이 안 될 만큼 둘 다 비극적이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매일 예측할 수 없는 나비효과를 경험하고 불확실성의 공포를 체감하고 있다. 건강에 관한 우려를 넘어,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항공·해운 산업, 국내 서비스업의 타격뿐 아니라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제조업 생산과 수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특정 민족·인종에 관한 혐오 확산은 차별과 인권 문제를 야기하고 사회 불안을 초래한다. 정보의 폐쇄성과 인프라의 부재가 얼마나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지 절절히 목도하고 있다. 이런 제법 큰 변화가 아니라도, 당장 학교의 개강과 각종 행사가 연기되고,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탔다 기침이라도 하게 되면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는 등 사소한 일상의 변화를 모두 몇 개쯤은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전문가들도 알아내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원인을 마지막에 이르러 밝힌다. 무분별한 숲 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돼지농장으로 날아들고 거기서 떨어뜨린 바나나를 주워 먹은 돼지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이후 한 음식점에서 그 돼지를 요리하다 대충 손을 닦고 나온 주방장이 미국인 손님과 악수를 하는데, 거기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단순히 영화적 상상으로 보기에는 소름이 끼치는 순간이었다.

다보스 포럼은 올해도 기후변화를 사이버 공격이나 테러 등의 항목을 제친 압도적 위험으로 꼽고, 세션의 약 20%에서 환경 문제를 주제로 논의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압도적 위험으로 예견되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로 고민하고 대비하고 있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비율 최하위, 식량 자급률 꼴찌 등 현재 성적은 차치하고라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암담하다. 선진국들은 다투어 탄소 배출제로, 내연기관 퇴출 선언을 하고 나서는데, 며칠 전 공개된 2050년 저탄소 장기 발전전략(LEDS)의 권고안은 얼마나 안일하고 피상적인가.

재난학의 선구적 이론가인 배리 터너는 재난을 ‘사전 경고를 무시하는 문화 속에서 축적된 위험 요소들이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집중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기후변화는 산불, 해수면 상승, 태풍 등 흔히 예견되는 수많은 위험 요소뿐 아니라 바이러스의 위험성도 키운다고 한다. 빙하가 녹으면서 고대 바이러스도 깨어날 것이라는 예견, 고온다습한 기후 또는 서식지의 파괴로 모기나 박쥐와 같은 매개체에 더 쉽게 노출될 것이라는 예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발견할 수 있는 사전 경고들을 무시했을 때,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스스로 재난의 피해자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현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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