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0일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각본·국제장편영화·감독상은 물론, 최고 영예인 작품상까지 휩쓴 데 대해 국내 영화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일제히 축하했다. 수상 이유로는 ‘인간에 대한 탐구심’,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를 다룬 점을 꼽았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기생충’이 작품상까지 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며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뒤 한국에서 열기가 시들해졌는데 미국에서는 한창 불붙는 상태다. 북미 시장에서 불고 있는 봉 감독 열풍과 ‘기생충 신드롬’을 우리가 잘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관객 수나 제작 편수, 매출 등 객관적 지표로 따져 보면 한국영화 산업은 전 세계 5, 6위권으로, 굉장히 큰 영화 시장”이라면서 “한국영화는 그간 칸을 비롯해 해외 영화제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 왔고 이번 결과가 갑자기 일어난 기적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날 로이터통신도 “한국의 영화산업은 세계 최대 규모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봉준호 감독론’으로 2017년 영화의전당 아카데미 영화 비평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한창욱 영화 평론가는 “장르 영화의 역사는 곧 미국 영화의 역사처럼 여겨질 만큼 할리우드는 오랜 시간 장르 영화의 선두 주자였다”며 “기생충은 할리우드에서도 배우고 선망하고 싶을 정도의 치밀한 장르적 완성도와 함께 장르를 절묘하게 비트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치밀함과 천재성의 결합이 할리우드와 미국 관객을 열광하게 한 것 같다”고 수상 이유를 분석했다.
한 평론가는 또 “기생충은 사회적 의미와 인간에 대한 탐구심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린다”면서 “단순히 영화가 어떤 언어로 만들어졌는지를 떠나, 장르 문법과 동시대의 보편적 문제는 언어를 뛰어넘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
김경만 영화진흥위원회 국제전략팀장은 “현지 마케팅을 지원할 때만 해도 ‘국제장편영화상 후보 지명만 돼도 좋겠다’는 분위기였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한국영화 산업과 창작자들에게도 굉장한 자극이 되고 한국영화의 외연이나 세계관을 넓혀 주는 대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도 “기생충과 관련된 사람들, 이런 큰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동시대 동종업계에서 일할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한다”면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 외에 배우 김남길과 박정민 등도 축하 행렬에 동참했다.
다만 영화계 관계자들은 ‘기생충’의 쾌거와 한국영화 위기론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독립영화의 어려운 제작 여건, 독과점 등 한국영화계의 내적 모순이 이런 외부의 성과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그런 성과들이 한국영화 전체의 체질 개선에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고 다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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