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이해하려면 북한, 중국, 일본,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 한국의 취약성을 이해하려면 위에 언급한 나라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이 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한국의 입장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국제정세 분석가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코소보 전쟁과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하게 예견하며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린다. 그는 놀라운 통찰력과 예측력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리드먼은 “사람들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듣지 않고, 그들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위에 있는 힘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 힘이란 바로 ‘지정학’이다.

지정학은 인문지리학의 원리를 적용해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학문 분야다. 예컨대 “한국은 잠재적인 적국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미국이 동맹으로써 필요하고,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해야 하므로 한국이 필요하다”는 한미동맹에 대한 프리드먼의 분석은 이러한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중국, 일본 북한은 각기 나름의 불안감을 느끼며 군사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정세는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또 “지정학적 현실이 변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과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런 측면에서 프리드먼이 최근 펴낸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은 한국과 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미국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책을 통해 유럽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분열과 위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자는 유럽과 유럽을 둘러싼 나라들을 통해 유럽 분열의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느 지점에서 위기가 폭발하게 될지를 예측했다.
책은 단순히 유럽의 이야기가 아니다. 근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몰락했는지, 그리고 처참한 유혈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인간들의 역사적 실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지정학적 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은 크고 작은 나라들이 끊임없이 각축할 수밖에 없는 유럽의 지정학을 설명한다. 이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1세기 유럽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에서 미국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유럽의 지정학을 보면서 한국의 지정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럽 통합의 기원은 미국에 있다고 했다.
“미국은 소비에트(현 러시아) 전략에 맞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유럽이 경제적으로 취약하면 사회불안이 높아지고 공산당의 영향력에 취약해진다. (…) 무엇보다 미국은 혼자서 소비에트를 방어하고 싶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인들을 재무장시키고 싶었고, 그러려면 유럽의 경제가 튼튼해져야 했다. (…) 결국 군사적, 경제적 통합을 밀어붙인 주인공은 미국인들이었다.”
저자는 유럽연합이 최근 무너지고 있으며, 다시 균형을 되찾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와 러시아·조지아 전쟁으로 인해 분열이 시작됐다고 했다. 금융위기로 독일과 다른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충돌했으며, 러시아·조지아 전쟁으로 소련 붕괴 이후 변방으로 밀려났던 러시아가 다시 유럽 무대에 등장했다.
또한 2016년 6월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에 대해선 ‘유럽연합을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영국은 유럽이라는 자유무역지대가 필요한 것이지, 통합된 유럽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영국은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연합에 끌려다닐 생각이 없고, 유럽연합보다 최대 고객인 미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그런 이유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나왔으며, 이는 유럽연합 분열을 촉진했다고 했다.
“유럽연합 내의 서로 다른 지역마다 여건과 관심사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면서 이 차이를 따라 경계가 생기고 유럽연합은 이 경계를 따라서 분열되고 있다. 각 지역이 겪는 현실은 저마다 다르고, 이러한 차이는 해소하기 불가능하다. 네 개의 유럽이 존재하고 이 네 개의 유럽은 더욱 분열돼 다시 민족국가로 회귀하고, 그들이 극복하고자 했던 역사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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