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서울 용산구 한 빌라의 65㎡(약 20평) 크기 주택 1채를 4억원 정도에 구입한 출판업계 종사자 B(40)씨도 당시를 떠올리면 분통이 터진다. 빌라 주차공간이 부족해 입주 후 불편을 겪지 않을까 담당 부동산 중개소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중개소 측은 “알아보겠다”는 말만 했고, 주택 매도자가 매매 잔금 입금을 독촉하는 상황까지 간 것. 별수 없이 거래를 완료하자 중개소 측은 거래 금액의 최고 상한요율인 0.4%를 적용해 수수료 150만원가량을 요구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요구한 금액을 지급했지만, 중개소에서 한 일에 비해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주택 매매나 전세 할 것 없이 부동산 중개수수료 부담을 호소하며 수수료 인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지난 연말 고강도의 12·16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만큼 주택 매매·전세가격이 급등하는 데 따라 부동산 중개수수료도 껑충 뛰어서다. 지난 2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을 올라온 관련 청원만 해도 190여개에 달한다. 청원 내용에 동의한 사람들은 “중개소가 업무에 비해 과도한 수수료를 받고, 거래금액에 따라 달리 매겨지는 수수료 때문에 되레 매매·전세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서울처럼 아파트 매매·전세가격이 비싸 은행 대출 등으로 주택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서민·중산층은 대출이자에다 세금, 이사비 등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중개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싸 버겁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반면 공인중개사들은 주요 외국에 비해 국내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오히려 싸다고 반박한다.

◆소비자들 “중개수수료 과도”… 자치구 민원 30% ‘중개수수료 갈등’
부동산 중개수수료율은 전국 시·도 조례로 결정돼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 서울의 경우 거래금액에 따라 크게 5단계로 나뉘고 상한요율이 적용된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주택 매매 수수료 기준은 △5000만원 미만(상한요율 0.6%·한도액 25만원) △5000만원 이상∼2억원 미만(〃 0.5%·〃 80만원) △2억원 이상∼6억원 미만 (〃 0.4%·한도 없음) △6억원 이상∼9억원 미만(〃 0.5%·〃) △9억원 이상(〃 0.9%·〃)으로 구분된다. 전세 등 임대차 계약도 0.3∼0.8%의 상한요율이 적용된다. 원칙적으로 중개수수료는 주택 매도자(소유자)와 매수자(세입자) 모두 지급해야 한다.
주택 거래 당사자들은 금액에 따라 상한요율을 구분하는 방식과 0.4∼0.9%(매매계약 기준)로 책정된 상한요율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서울시 조례상 중개수수료는 상한요율을 정한 뒤 소비자와 중개소가 협의를 해 정하도록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은 의뢰인들로선 중개소 측이 최대 금액을 요구해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 자치구별 부동산 담당부서에는 중개수수료 불만을 제기하는 민원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강북지역 한 구청 관계자는 “하루 민원전화 중 30%는 과도한 중개수수료에 대한 항의 전화”라며 “다만 조례로 정해진 상한요율 내에선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부분 자치구에서 지난 5년간 과다 중개수수료 문제로 행정처분이 내려진 적은 없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월부터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뢰인과 중개소 측의 중개수수료를 현행 계약 최종 시점에서 계약서 작성단계에 확정하도록 했지만 중개수수료 인하에 실질적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다. 강남지역 한 구청 담당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계약서 작성 이후에도 잔금지급 등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미리 수수료를 확정한다고 선뜻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개협회 “수수료 2∼10%인 해외에 비해 싼 편… 집값 상승에 따른 결과”
반면 국내 중개수수료율이 주요 나라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 아닌 점을 들어 수수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수수료 자체보다 ‘서비스 질’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개소의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 ‘비싼 수수료’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국제 주택투자 정보업체 ‘Global Property Guide’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북미(미국, 캐나다)와 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중개보수율은 2∼10% 수준으로 우리보다 높다. 미국 뉴욕주(6%)와 캐나다(3∼7%), 영국(2∼3.5%·소비세 제외)은 매도인에게만 수수료를 받지만,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주택의 경우 권리 관계 등이 복잡하다”며 “중개 과정에서 이 같은 어려움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가격 비쌀수록 수수료율 높아지는 것도 문제… “중개수수료율 통일, 서비스 품질 제고해야”
집값에 비례해 수수료가 책정되는 구조도 수수료 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서비스의 질은 제자리인데 수수료가 집값에 따라 널뛰기하는 탓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최근 수년간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해 수수료 부담이 급증했다.
이날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8억9751만원이다. 2013년 12월 4억6777만원과 비교해 2배가량 뛰었다. 같은 기간 중개수수료가 최대 187만원에서 808만원으로 3배 이상 폭등한 것이다. 김용민 전 강남대 교수(부동산학)는 “중개수수료율 자체는 해외에 비해 낮은 편이나 아파트(매매·전세) 가격이 오르면 수수료를 많이 받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계약금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구분한 중개수수료율을 일괄적으로 낮춘 뒤 통일하고, 중개서비스 질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1억원이든 10억원이든 계약금액이 달라도 중개소에서 하는 업무는 동일하다”며 “공인중개사들의 생계에 위협되지 않을 정도로 0.4% 혹은 0.5%로 중개수수료율을 단일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도 “택시를 타면서 매번 기사와 승객이 가격을 협의하는 방식이라면, 어느 한쪽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를 정률제로 하되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 품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부동산투자사 라살자산운용이 발표한 ‘2018년 글로벌 부동산 투명성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투명성 순위는 조사대상 100개국 중 31위다. 우리보다 중개수수료가 비싼 영국과 미국, 독일은 모두 10위권 이내였다. 선진국 대부분 부동산 중개부터 알선, 매매, 교환, 위탁 계약대리, 임대료 수납, 부동산임대관리, 부동산 감정평가, 부동산관리, 부동산조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수행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중개수수료보다 서비스 향상을 통해 소비자 만족감을 높이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유섭·권구성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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