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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대신 연탄 나른 천사들… “나눔하고 힘 얻어가요” [밀착취재]

입력 : 2020-01-01 18:54:01 수정 : 2020-01-01 21: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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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소외된 이웃 돕는 ‘사랑의 천사클럽’ / 경자년 첫날 서울 홍은동서 봉사 / 궂은 날씨에도 시민 70여명 참여 / 휴가 나온 군인도 아버지와 동참 / 연탄 2000장 모두 회비로 준비 / 주민 “항상 감사… 이웃과 나눌 것”
2020년 새해 첫날인 1일 ‘신년맞이 연탄나눔’에 나선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일대에서 줄지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올해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연탄 봉사로 한 해를 뜻깊게 시작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2020년 새해 첫날인 1일, 백령도에서 군 복무 중인 이푸름(22) 해병대 일병은 천금 같은 휴가를 아버지 이민우(53)씨와 함께 ‘신년맞이’ 연탄 배달에 할애했다. 이 일병은 “아버지와 함께 추억도 쌓고 이웃도 도울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일대에는 이 일병 외에도 혹한을 견뎌내야 하는 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러 모인 시민 70여명의 힘찬 목소리와 경쾌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올해로 13년째 ‘신년맞이’ 연탄 배달을 이어온 ‘천사’들은 “새해 첫 나눔으로 오히려 힘을 얻어간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6도 가까이 떨어진 이날 홍은1동주민센터 앞에는 이른 시각부터 연탄 배달에 나선 시민들이 속속 자리했다. 나눔 활동 온라인 커뮤니티인 ‘사랑의 천사클럽’ 등을 통해 뭉친 이들은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2006년 포털 카페를 통해 결성된 천사클럽은 매년 1월1일이면 홍은동에서 연탄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카페지기인 구본상(47)씨는 “(천사클럽은) 특정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시민의 자발적인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며 “한여름인 6∼8월을 제외하고는 매달 한 번씩 모여 이웃에게 연탄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날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된 2000장의 연탄도 참가자들이 낸 1만5000원의 회비로 충당했다.

 

오랜 기간 활동한 경험 때문에 이날 배달은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나눔 장소 인근까지 트럭으로 운반한 연탄을 내려주는 ‘하차팀’과 나눔 장소의 연탄 창고에 연탄을 쌓는 ‘적재팀’,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전달팀’으로 나뉘어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나눔 활동에 처음 참여한 ‘신입’들을 위해 본격적인 연탄 배달에 앞서 20여분간의 연습도 진행됐다. 3.65㎏의 연탄을 빠른 속도로 전달하는 과정에 일부 참가자들은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한 듯 비장한 표정을 내보였다.

본격적인 배달은 오전 10시쯤부터 시작됐다. 첫 연탄은 지그재그로 길게 늘어선 참가자들을 차례대로 거쳐 함모(70) 할머니 댁 연탄 창고에 도착했다. 전달법이 손에 익으면서 속도도 점점 빨라졌고, 추운 날씨에 얼었던 몸도 함께 풀려갔다. 빨라진 속도에 한 참가자가 연탄을 떨어뜨리는 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비난보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서로서로 “괜찮으세요”, “허리 아프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며 진행된 첫 배달은 시작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200장의 연탄이 모두 전달되면서 마무리됐다.

 

5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홀로 사는 함 할머니는 “(봉사자들이) 한 식구처럼 매년 연탄을 주니 외로움 없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다”며 참가자들이 신년 선물로 건넨 가래떡과 인절미를 “이웃과 함께 나누겠다”고 말했다. 이어 연탄을 전달받은 홍은동 주민 정모(65)씨는 “7년간 연탄을 받아왔는데 항상 고마운 마음”이라며 “새해 첫날 나눠 주는 연탄으로 한 해를 따뜻하게 시작한다”고 했다.

매년 연탄 나눔 장소를 선정하는 방경희(73) 홍은1동 자원봉사캠프 회장은 “신년이면 찾아와 연탄을 배달해 줘서 주민들이 아주 고마워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나눔 활동에 참여한 김원희(42)씨는 “작년 한 해를 기분 좋게 시작해 다시 참가했다”며 “오히려 저희가 좋은 마음으로 힐링을 얻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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