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지난 한 해 보수와 진보로 갈려 저마다 광장으로 달려가 상대를 규탄하는 극단의 ‘광장 대결정치’로 들끓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정치 본연의 역할인 대화와 타협보다는 수적 우위를 내세운 밀어붙이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며 갈등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지적이다.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법 등을 둘러싼 극한 ‘입법 대전’도 같은 맥락이었다. 대한민국 정치권이나 기성 정치인들의 리더십처럼 국민들의 성향도 과연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 있을까.
세계일보가 2020년 경자년을 맞아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 창’과 공동기획하고 여론조사전문기관 ‘우리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진행한 ‘2020년 한국사회 진단과 전망 여론조사’(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를 31일 분석한 결과 정치권에선 이념적 성향에 따라 상대편에 십자포화를 쏟아붓는 각종 주제에 대해 응답자들은 오히려 크게 대립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외교와 한반도 정책을 최대한 정부가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74.1%가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이념성향별로는 본인을 ‘적극 진보’로 분류한 응답자의 공감률이 91.3%로 가장 높았고 ‘소극 진보’ 87.1%, ‘소극 보수’ 57.5%, ‘적극 보수’ 50.5% 등 순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급여와 처우를 정규직처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적극 보수’의 공감률은 62.4%에 달했다. ‘적극 진보’(77.6%)와의 격차는 15.2%포인트에 불과했다.

특히 양 진영의 ‘이념 아이콘’이 된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념성향별 차이는 분명히 드러났지만 반대 진영에서도 호감 비율이 꽤 높게 나타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45.0%가 ‘호감이 있다’고 답변했는데, 이념성향별로 ‘적극 보수’가 83.5%, ‘소극 보수’ 55.3%, ‘적극 진보’ 24.8%, ‘소극 진보’ 23.8% 등의 순이었다. 이념별 차이는 뚜렷했지만 진보에서도 5명 중 1명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선 68.4%가 호감을 나타냈고 이념성향별 공감률은 ‘적극 진보’ 91.3%, ‘소극 진보’ 86.6%, ‘소극 보수’ 46.8%, ‘적극 보수’ 31.2%로 나타났다. ‘소극 보수’는 2명 중 1명이, ‘적극 보수’는 3명 중 1명이 긍정적으로 바라본 셈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보수의 공감률이 비교적 높은 것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에서 중도로 이동한 국민이 많은 걸 감안해야 한다”며 “한국당이 계속 오른쪽으로 가도 지지율이 높아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국민의 성향보다는 국민을 극단의 대립으로만 몰고 가는 정치 상황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당인 민주당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높은 편인 데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만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채우다 보니 의회정치를 작동시키기보다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이 야당에 대해 아량과 관용을 베풀지 못하다 보니 야당은 더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사회적 갈등이 심각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미·최형창·이창훈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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