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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트럼프의 新고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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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6 23:58:38 수정 : 2019-12-26 23: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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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도 美 우선주의 주장 / 2차대전 후 국제질서 관리役 / 자유주의 퇴조 전환기 맞물려 / 美 외교정책 당분간 지속될 듯

미국 외교정책의 고립주의 전통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건국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독립 주역의 성향부터가 매우 고립주의적이었다. 당시 국제관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에서는 강대국이 국익 추구를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며, 동시에 한시적 동맹을 체결해 합종연횡하는 전형적인 세력균형 정책에 골몰하고 있었다. 건국의 주역은 미국이 유럽과 세력균형 정책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이임식에서 미국이 유럽에 관여하거나 동맹을 맺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19세기 말 20세기 초 국제질서는 유럽 열강이 주도한 제국주의·식민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미국도 세력 확장과 시장 개척을 위해 제국주의·식민주의 게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외교정책도 개입주의적 면모를 띠게 된다. 아시아로도 눈을 돌려 페리 원정으로 일본에, 문호개방 정책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스페인과 전쟁하기 위해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기도 했다. 특히 26대 대통령 시오도어 루스벨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유사한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웠다. 헨리 키신저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루스벨트는 미국이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모범이 돼야 하는 특별한 나라가 아니고, 다른 나라와 같이 힘을 앞세워 국익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주장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임기(1901∼1909)는 미국외교 고립주의 시기에 포함된다.

고립주의가 비(非)개입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립주의란 첫째, 미국이 주도해 국제질서를 창출해 관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냥 시류에 편승해 미국의 국익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 국익이 걸려 있는 사안과 지역에는 확실히 개입하지만, 그 외에는 개입을 삼가겠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국익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유럽 내의 상황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1차 대전도 유럽의 전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반적인 미국의 국가 분위기였다. 독일이 멕시코와 동맹을 맺어 미국을 공격하자고 제안한 ‘치머만 전보’가 발각되고, 독일의 잠수함 공격이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해 128명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미국은 참전을 결정했다. 미국 외교정책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전간기(戰間期) 약 30년 동안 다시 고립주의로 회귀한다.

미국은 2차 대전이 발발한 2년 후 진주만 기습공격을 당한 다음에야 참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고립주의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가 않았다. 이들은 압력단체인 ‘아메리카퍼스트 위원회’를 발족해 참전을 반대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퍼스트, 즉 미국우선주의 슬로건은 이 위원회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사회의 ‘주류’들이 고립주의를 지향해 왔음을 알아야 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후에야 미국의 엘리트들은 미국이 국제관계 질서 구축과 관리에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세계대전과 같은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국제주의’ 외교노선이 2차대전 이후 지속돼온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국제주의 노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신(新)고립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자유주의와 지구화가 퇴조하는 전환기의 국제질서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미국의 엘리트 대부분은 여전히 국제주의 외교노선을 지지하고 있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 반대세력이 중요한 ‘컨스티튜언시(constituency·지지층)’가 돼 미국 대선의 향배를 좌지우지하게 됐다.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트럼프 대통령 정책의 내용과 그의 자질은 비판하고 있지만, 정책기조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2020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 기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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