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아버지를 잃은 8살, 5살 아이에게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이 전해졌다. 아버지가 세상과 결별하기 전 주문한 선물이다.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8살 딸은 선물을 받고 눈물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잠시 들렸다 돌아온다고 믿고 있는 5살 아들은 장례식장에 119 구급차가 도착할 때마다 “아버지가 언제 오냐”고 어머니에게 되물었다. 부산경남경마장의 불공정함을 폭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15년차 경마기수 고 문중원(40)씨의 가족들 얘기다.
24일 유가족과 공공운수노조 등에 따르면 문씨는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 인터넷으로 두 자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했다. 그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아이들에게 전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아내 오모씨에게 남겼고, 오씨는 선물들을 차에 보관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에게 전했다. 문씨가 아이들에게 남긴 선물은 장난감 화장대 세트와 레고였다. 모두 아이들이 평소 갖고 싶어 했던 것들이라고 한다.

문씨의 장인은 “(문씨가)마지막 날 딸에게 ‘일찍 자’, ‘내가 좀 늦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사망하기 3일 전까지 가족이 모여 식사할 정도로 가정적이었던 남편이었다”고 했다.
앞서 문씨는 지난달 29일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통해 경마 기수로 활동하며 겪은 복마전 실태를 폭로했다.
그는 유서에서 “(경마 출전 가능 여부를 가리는) 주행검사에서부터 합격만 할 정도로 타라 하고 데뷔전(특정 말이 처음 경마에 출전하는 날)에 뻑(탈락)시키고 다음엔 쏘아먹고(잘 달리게 하고), 말들은 주행 습성이란 게 있는데 그 습성에 맞지 않는 작전지시를 내려서 아예 인기마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한국마사회의 조교사 마방 배정에 대해서도 “(마방을 얻기 위해선) 높으신 양반들과 친분이 없으면 안 됐다”며 “내가 좀 아는 마사회 직원들은 대놓고 나한테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한국마사회 측은 부산경남경마 책임자를 직위해제하고 부정경마 및 조교사 개업비리 의혹에 대한 내부감사에 나섰다. 유가족과 노조 측은 마사회에 문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진정한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장례를 연기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남편의 사망만으로 경황이 없었을텐데 (문씨의)부인이 아빠가 보낸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은 챙겼다”며 “유가족은 한국마사회에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해왔으나 (마사회 측은)실무진만 내보낸 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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