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강력한 규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집값 급등세가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21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번주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주에 비해 0.23% 올랐다. 이번 조사기간이 지난 14~18일인 만큼 지난 16일 발표된 종합 부동산 대책의 영향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주에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긴 했지만 최근 가파르게 오르던 상승세는 둔화된 모습이다. 지난 13일 조사 때는 0.21% 올라 지난 6일 조사 때(0.11%)에 비해 0.08%p 상승했던 것에 비해 이번 주는 0.23%로 전주에 비해 0.02%p 오르는 데 그쳤다.
실제 시장에서도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일단 지켜보자는 관망세가 강해지면서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는 반응이다.
부동산114 임병철 수석연구원은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계약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사례도 늘었다"며 "강남권을 중심으로 대책 발표 이후 시장 분위기가 급변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급매물도 아직까지는 눈에 띄지는 않았고 시세를 하향 조정하는 모습도 적었다"며 "대책에 따른 아파트값 변화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출규제 강화, 시장 영향 有…매수·매도 관망세 짙어질 듯
부동산 대책 이후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사려는 사람이나 팔려는 사람 모두 관망세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당분간 매수자와 매도자간 눈치싸움이 이어지면서 집값 상승세도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는 지역별로는 ▲강동(0.65%) ▲송파(0.57%) ▲관악(0.28%) ▲서초(0.28%) ▲구로(0.25%) ▲동작(0.24%) ▲광진(0.21%) ▲강남(0.20%) 등이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올랐다.
강동구는 부동산 대책 발표 이전 매물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비교적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부동산114는 분석했다.

신도시도 아직까지 부동산 대책 영향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일산(0.08%) ▲중동(0.06%) ▲분당(0.04%) ▲동탄(0.03%) ▲위례(0.03%) ▲판교(0.01%)가 상승했다.
일산은 조정대상지역 해제 이후 거래가 이어지면서 올랐다. 일산동 후곡15단지건영, 후곡8단지동신, 마두동 강촌8단지우방, 주엽동 문촌17단지신안 등이 500~1000만원 상승했다.
임 연구원은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은 관망세가 형성되고 있다"며 "대출규제 강화로 대출이 막히면서 강남권을 중심으로 추격 매수심리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책으로 보유세 부담과 대출규제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의 진입은 어느 정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6월까지 양도세 중과 한시 면제 등의 대책으로 다주택자들의 매도 움직임도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9억원 이하 아파트 수혜 예상…"대출규제 덜한 단지로 매수세 이동할 듯"
다만 9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9억원 이하 아파트들의 이른바 '갭 메우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LTV)을 원천 금지하고 9억원 초과 아파트도 대출가능 금액을 기존의 40%에서 20%로 줄이는 등의 초강력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다음날인 17일에는 시가 9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내년도 공시가격을 인상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공시가격은 종부세, 재산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만큼 공시가격이 인상되면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보유세가 크게 오르게 된다.
임 연구원은 "비규제지역이나 대출규제가 덜한 9억원 이하 아파트 매수로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남권 등 고가 부동산시장 풍부한 현금 지닌 자산가 위주로 이미 재편됐다"
올해 주요 시중은행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중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한 대출 비율이 5%도 안되는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서울 강남 부동산을 겨냥해 '15억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실제 강남 초고가 주택 구매자들의 주담대 의존도는 지극히 낮다는 얘기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가 잇따르면서 강남 부동산 시장은 풍부한 현금을 가진 자산가 위주로 재편된지 오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의 대출 규제 조치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15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올해 취급한 대출은 은행 주택담보대출 취급액 중 각 3~5%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올 1~11월까지 주요 시중은행 5곳에서 나간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약 30조955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5억 초과 주택 구매자들이 빌린 금액은 아무리 많아도 1조5500억원에 불과한 것이다. 대출액의 95%인 29조4050억원은 15억 이하 주택 구매자들이 빌린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초고가 주택의 대출을 봉쇄해 서울, 그중에서도 특히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것인데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가 다주택자 매수심리 누그러뜨리는 효과 일정 부분 있을 듯"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2019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갖고 있는 개인은 32만3000명으로 1년 전(31만명)보다 1만3000명(4.4%)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자산가의 45%는 서울에 살았고, 그중 46.6%는 '강남 3(강남·서초·송파)구에 거주했다.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이 전국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 있는 15억원 초고가 아파트를 집계한 결과 서울에 있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77%가 강남 3구에 몰려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일각에선 '15억 초과 주택' 대출 금지 조치가 직접적으로 강남 집값 상승세에 제동을 걸지 못하더라도 고가 다주택자들의 매수세를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가운데 정작 현금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 집을 늘리려거나 입지가 좋은 곳으로 갈아타려 했던 실수요자나 중산층이 피해를 보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이 금지된 것뿐만 아니라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도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이 40%에서 20%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고가 아파트의 분포와 시세 움직임을 기준으로 대출 규제를 정하다보니 정작 가격별 대출 규모를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 투기 수요 vs 실수요 구분해야…'핀셋 증세' 정책 되레 집값 부추기는 요인
한편 다주택자에 대한 이른바 '핀셋 증세' 정책은 향후 주택 가격을 추가로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부동산 조세 정책의 발전 방향'을 주제로 연 정책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김유찬 조세연 원장은 "중과 혹은 고율 과세 적용을 다주택에 국한하면 강남 지역 주택의 선호도가 강화되고, 이어 강남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이 돼 여타 지역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경로는 통상 강남 지역에서 시작되며 초기에 강남에 국한돼도 시차를 두고 가격 상승의 효과가 여타 지역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기초해서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또 "주택 3~4채를 합친 것보다 비싼 고가주택을 한 채 보유한 사람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공정성 문제도 제기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고가 주택의 공시가격을 현실화해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대폭 늘리는 내용을 담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낮춰 주택 공급을 유도하는 방침에 대해서도 그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조세 정책을 위해 보유·양도·거래에 대한 적절한 과세는 필요하다"면서도 "양도세 인하는 단기적인 주택 매매 효과를 도출할 수 있지만, 부동산 투자의 수익을 높여 부동산으로의 재원 쏠림 현상을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주택 공급을 늘린다 해도 다주택자가 계속해서 주택 보유를 늘릴 수 있는 구조에선 주택 소유 편중만 심화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대비 2018년 주택 수는 1510만호에서 1999만호로 489만호 늘었는데, 이 기간 주택 소유자는 1058만 명에서 1299만 명으로 241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은 452만호에서 700만호로 248만호 불어났다.
다주택 소유자가 전체 주택 보유자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다주택자 비율은 2012~2014년 13%대에 머물다 2015년 14.4%, 2016년 14.9%, 2017년 15.5%, 2018년 15.6%까지 상승했다.
김 원장은 주택에 대한 수요를 '투기적 수요'와 '실수요'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투기적 수요는 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라며 "정부가 투기 수요에 맞춰 주택을 공급하는 경우 공급은 투기적 수요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이어 "좋은 주택에 대한 수요를 핑계로 강남 지역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재건축 아파트 규제를 완화하면서 투기 수요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효과를 내 시장을 불안정하게 한다"며 "다주택자 비율이 늘고 있는 현 여건에서 시장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상당 부분 다주택자의 보유 주택 수를 늘려주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이밖에 민간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세제상 혜택과 관련, "다주택 갭투자, 보증금 반환 거부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은 주거 안정뿐 아니라 거시 경제 안정과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성장, 자산의 분배와 격차 완화 등 경제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적절한 대출 규제와 가격 규제,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장기적 조세 정책, 공정하고 현실적인 부동산 가치 평가 체계 등이 어우러진 부동산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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