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역사가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은 ‘빅 히스토리’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사의 굵직한 사건에 가려진 이면을 읽어내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다는 명성을 얻었다. 인물, 대형 사건 중심의 종래 인간 지배적 사관으로는 볼 수 없는, 역사의 저변을 개척해 탁월한 혜안을 보여준다. 2007년 개정판을 내면서 세계 수십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읽히고 있는 명저이다.
그가 운을 뗀 주제는 태평양상의 이스터섬이다. 칠레에서 3200㎞ 거리에 있는 외딴섬 이스터에 유럽 뱃사람들이 처음 도착한 때는 1722년 부활절(이스터)이었다. 섬에는 누추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3000명 정도의 주민이 있었다. 유럽인들은 이 섬에서 놀라운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모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평균 6m 높이의 석상이 한두 개도 아니고 887개나 우뚝 서 있었다. 그 조그만 외딴섬(163.6㎢)에 거대 문명이 건설된 비밀은 아직도 석연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그런 고립된 섬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한순간 몰락했다는 것이다. 한때 2만명에 달했던 원주민은 극도로 제한된 자원에서 나무를 잘라 이 거대한 석상을 옮기는 받침대로 사용했다. 그나마도 부족한 숲을 마구 파괴하면서 생태계가 붕괴하고, 원주민 간 전쟁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사회 전체가 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상 수천년간 걸쳐 땀 흘려 건설된 그 사회는 환경과 더불어 몰락했다.

저자는 “이스터섬은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례다. 그것은 인간 사회가 환경에 의존한다는 사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을 파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섬뜩한 사례”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농작물 위주의 단조로운 식단으로 영양부족을 초래하면서 질병에 취약해졌다.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살면서 질병이 번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농업은 새로운 질병을 가져다주었다. 동물과 같은 공간에 살게 되면서 동물에게만 유행하던 전염병이 변형되어 인간에게 전해졌다. 농업이 지닌 약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다. 구황작물 감자는 너무나도 성공적이어서 아일랜드에 인구과잉을 몰고 왔다. 1840년대 중반 기후가 나빠지면서 역병이 돌았고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수많은 사람이 떠났다. 아일랜드의 인구는 절반 수준인 450만명 정도로 줄었다. 감자에만 의존한 대가는 혹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품종 개량을 통한 이른바 ‘녹색혁명’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생산량이 늘기는 했어도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엄청난 양의 비료와 물, 살충제가 투입되었다. 식량에서 얻을 수 있는 열량의 90%가 단 20여종의 작물로부터 나올 정도로 치우침도 심해졌다. 다국적 종자 회사들은 다음 해에 뿌릴 씨앗을 맺지 못하는 새로운 종자를 개발해 해마다 큰 수입을 얻었다. 품종 독점의 행태이다.
지난 두세기 동안 유럽인들은 세계를 약탈했다. 거듭된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늑대와 같은 야생동물들이 유럽에서 먼저 사라졌다. 유럽 바깥에서는 더했다. 러시아인들은 모피를 찾아 동물들의 씨를 말리며 동쪽으로 계속 나아가 마침내 시베리아에 이르렀다. 한때 북아메리카의 하늘을 덮었던 50조 마리에 달했던 여행비둘기는 1914년을 끝으로 멸종되었다. 바다와 해안에서는 대구와 바다표범, 고래 등이 남획과 학살을 피하지 못했다.
기후문제는 훗날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기후는 인간의 활동 반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세 온난한 시기가 시작되자 바이킹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북유럽인들이 북쪽으로 항해했다. 아이슬란드는 874년에 노르웨이가 식민화했다. 그린란드는 986년에 식민화되었다. 그러나 1200년 이후로 점점 기온이 하강하자 그린란드 정주지역은 1500년 무렵에 소멸했고, 아이슬란드에서는 인구가 급감했다.
인간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기후변화의 주체가 되었다. 석탄은 항상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로 살아왔던 인류에게 처음으로 많은 에너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석탄이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은 너무 컸다. 1952년 런던을 덮친 스모그의 원인도 석탄이었으며, 각종 질병이나 산성비 등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석유 같은 화석연료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켰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40% 이상 가했다. 그에 따라 지구의 기온도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650여쪽에 이르는 책에서 저자는 결론에서 무거운 숙제를 던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덥고 기나긴 여름이 매년 계속되고 있다.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미세먼지의 습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지금도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후쿠시마의 핵연료는 훗날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모두가 현재진행형 문제들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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