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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몰락 부르는 ‘숨겨진 최고 권력’… 또다시 어른거리나 [심층기획 - 역대 정부 '비선 실세' 논란]

입력 : 2019-12-19 06:00:00 수정 : 2019-12-19 08: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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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때 차지철, 김영삼 아들 현철씨 / 권력자에 기대 ‘무소불위’ 끝 피살·구속 / 직책 없이 국정 관여 ‘비선 실세’ 최서원 / 박근혜 곁에 본인 사람 심어 눈·귀 가려 / ‘수뢰’ 감찰 무마된 뒤 영전했던 유재수 / 선거 직전 김기현 前 시장 수사한 경찰 / ‘실세 지시 있었나’ 의혹 키우는 결정들 / 檢 수사과정 ‘文측근들’ 이름 오르내려 / 대기업들 돈 강제 출연 / 대통령 동원 금품수수 / 직권남용·강요죄 해당 / 측근 시켜 자료 폐기 → 증거인멸 교사 / 범죄수익 은닉 처벌 위반 등도 적용
역대 어느 정권이나 ‘실세’는 존재했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에 권한과 정보가 몰리고, 사람이 따르는 건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비선 실세’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권한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나 아주 작은 권한만을 가진 사람이 무대 뒤에서 그 범위를 넘어서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민주적 절차가 훼손되면서 모든 정치적 대화와 논의 과정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정책 결정, 민주적 대화의 부재를 경험했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 마침내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의 실명이 나오면서 난맥상의 원인과 배경을 이해하게 됐다. ‘비선 실세’는 그렇다면 과거의 일에 불과할까. 지금은 어떨까.

◆차지철·박철언 등 역대 정권마다 실세들이 있긴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차지철 경호실장,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박철언 장관 등이 실세로 불렸다. 차지철은 1974년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된 뒤 승승장구하다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 연회장에서 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박철언 장관은 노태우정부 시절 ‘6공의 황태자’로 불리면서 정무제1장관과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전두환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권력을 두고 뒷말이 많았지만 정부기관 내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최초의 비선 실세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소통령’이란 말을 들은 아들 김현철씨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씨는 각종 이권과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궁지에 몰려 결국 검찰 수사 끝에 구속됐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역시 나란히 ‘게이트’로 기소되면서 대통령 친인척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씨의 존재는 이례적이다.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었던 데다 대통령 친인척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처음엔 ‘비선 실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근혜정부의 최씨 이례적

지금 돌이켜보면 비선 실세가 존재한다는 징후는 보였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경우가 한 예다. 노 차관은 2013년 문체부 체육국장 재직 당시 대한승마협회를 조사하다가 돌연 좌천되고 결국 옷을 벗었다. 이후 언론 취재 등을 통해 노 차관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관련 사건을 박근혜 전 대통령 뜻과 달리 처리했다고 이유로 좌천됐다는 게 드러났다.

돌연한 좌천 말고 알 수 없는 발탁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체부 장관에 홍익대 김종덕 교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를 임명했는데, 발탁 배경을 알기 힘들어 당시엔 의아해했지만 나중에 이들의 배후에 최씨의 지인인 차은택씨가 있었던 점이 밝혀졌다. 김 전 장관은 차씨의 대학원 은사, 김 전 수석은 차씨의 외삼촌이다.

그러면 이런 비선실세는 어떻게 생겨날까. 일각에서는 대통령과의 인연을 꼽는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는 ‘최태민 일가’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에서 찾기도 한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일가가 긴 세월을 함께하면서 심리적으로 의존관계에 빠졌다는 것이다. 다른 일부에서는 권력자가 빠질 수 있는 ‘결정장애 심리’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결정과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겨 심리적인 부담감에서 빠져나오려 했다는 것이다. 정보의 차단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최씨의 경우엔 박 전 대통령 주변에 자기 사람을 심어놨고, 그렇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역시 최씨가 의도하는 정보만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박근혜정부에서 일한 야권 관계자는 “어느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최씨의 등장은 미스터리했다”며 “지금으로선 모든 분석이 다 맞는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검찰·야권에선 문재인정부 관련한 수사·의혹 제기

문재인정부는 비선실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권 전반기를 지나 하반기에 진입하면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각종 사건들은 여권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비선실세의 존재까지는 아니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사정기관들 사이에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건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건’(구속)이다. 유 전 부시장은 2017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재직 시절 뇌물수수 혐의로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받았지만, 감찰은 돌연 중단되고 유 전 부시장은 국회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영전을 거듭했다. 뇌물수수 사건 감찰 무마와 연이은 인사 영전의 배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당시에도 “이상한 일”이라는 뒷말이 정치권에서 파다했다.

일부에선 ‘김기현 전 울산시장 수사 사건’과 ‘우리들병원 사건’을 들기도 한다. 황운하 현 대전지방경찰청장이 과거 울산지방경찰청에 부임한 뒤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들에 대한 수사를 본격 개시해 결과적으로 김 시장이 낙선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이 당선되는 데 일조했는데,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지 않았느냐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이들 사건과 관련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천경득 청와대 행정관, 김경수 경남지사,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난 비리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정치권 일부에서는 박근혜정부 때와 달리 현 정부는 단일 개인보다는 ‘실세 그룹’이라는 말로 새로운 권력들을 이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선 실세’ 최서원의 혐의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 사건에 적용된 혐의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이들 혐의는 어느 정권에서든 비선 실세가 저지를 수 있는 범죄목록인 동시에 권력자들에게 가하는 경종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우선 검찰과 특별검사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의 죄를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씨에게 적용했다. 최씨가 청와대와 짜고 자신이 설립한 재단에 대기업들이 돈을 출연토록 강제한 혐의에 적용한 것이다. 최씨 사건에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과 같은 재단이 등장하는 점이 이채롭다. 검찰 수사결과 이들 재단은 최씨가 나중에 돈을 빼낼 수 있는 일종의 ‘저금통’, ‘비자금 저수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밝혀졌다. 기업들에서 받아낸 돈의 규모가 수백억원대에 달해 보통의 뇌물 사건에서와 같은 현금보다는 재단 출연금 형태로 돈을 수수한 것으로 보인다. 강요 혐의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앉히는 등의 행위에도 적용됐다.

 

‘뇌물’은 일반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범죄이면서 동시에 ‘비선 실세’ 사건에서 법리 다툼이 심한 부분이기도 하다. 대기업들에 특혜를 주기로 하고 금품을 받았다면 뇌물로 처리하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비선 실세가 최고권력자를 동원해 금품을 받아낸 경우에 대기업 입장에선 금품을 뜯긴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으냐는 항변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원은 뇌물과 ‘강요’·‘직권남용’이 함께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증거인멸 교사’는 자신들에 관한 언론 기사 등이 나오자 측근들을 시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SSD카드 등 관련 자료를 폐기한 행위에 적용한 혐의다.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증거를 인멸하기보단 측근이나 부하 직원들을 시켜 인멸했기 때문에 ‘교사’ 혐의가 적용된 게 특징이다.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은 아직은 낯선 죄목이다. 범죄수익을 합법적으로 얻은 수익인 것처럼 꾸며낼 때 적용한 범죄로, 최씨 등이 자신들의 범죄수익 과정을 기교적으로 은폐하려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적용한 것이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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