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신비롭고 하늘도 대지도 ‘작품’/젊은달 와이파크 이상한 나라에 온듯/조각가 최옥영 감각적 작품들 탄성 자아내게 해/붉은 ‘바람의 길’은 포토존/문화체육부·한국관광공사 ‘숨은 관광지’로 선정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이면 휴일이라도 나들이하기 쉽지 않다. 따뜻한 방을 떠나 ‘사서 고생’하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자녀들은 곧 겨울방학이다. 아이들은 노는 재미에 추위도 잘 타지 않으니 방학이 되면 나들이를 가자고 조를 것이 분명하다. 추위를 피하면서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추천이벤트를 진행해, 긴 겨울방학 동안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숨은 관광지를 선정했다. 올겨울 여행지는 예술의 향기 가득한 미술관이다.


#영월에 둥실 떠오른 ‘젊은 달’ 와이파크
미술에 그리 관심이 없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미술관 여행은 자칫 따분할 수도 있다. 난해한 세상을 이해하라고 강요당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다. 이처럼 예술에 문외한이라면 영월로 떠나보자. 당신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예술적 감각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에 지난 6월 문을 연 ‘젊은달 와이파크’다.


입구의 거대한 ‘붉은 대나무’가 미술을 몰라도 ‘와!’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건축할 때 쓰는 금속파이프에 강렬한 레드 컬러를 입혔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초록, 하얀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과 어울리며 그 모든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파이프를 여러 개 연결했는데 연결마디가 멀리서 보면 마치 대나무와 흡사하다. 대지를 캔버스 삼아 대형 설치작품을 꾸미는 것으로 유명한 조각가 최옥영의 작품이다. 강원도 강릉의 오죽을 영월의 자연 색인 녹색과 가장 대비되는 붉은색을 사용해 표현했는데 넘치는 에너지와 우주가 느껴진다. 대나무숲으로 들어가 보자. ‘발자국’을 따라가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미술관이 나온다. 그대로 들어가지 말고 뒤를 한번 돌아보면 파란 하늘을 감싸는 붉은 대나무숲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소나무를 엮어서 만든 설치미술 ‘목성’도 작가의 예술 감각이 돋보인다. 한낮에도 목성 안으로 들어서면 머리 위에는 밤하늘처럼 수많은 별이 떠다니는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강원도 소나무 장작을 엮어서 만들었는데 아주 작은 틈새로 삐져나오는 햇살이 별처럼 보인다. 생명의 분화구와 같은 빛과 에너지를 품은 바구니를 엎어 놓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벽과 천장이 온통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시간의 거울-사임당이 걷던 길’에서는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온 듯 환상에 빠지고 ‘우주정원전’에 들어서면 우주로 가는 통로를 걷는 듯하다. 목수들이 작업하다 남은 나무 파편들을 모아 에너지의 집합체인 별똥별을 만들어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나타냈다.


두 개의 거대한 전시관으로 구성된 ‘붉은 파빌리온’으로 옮기면 지구 침략에 나서려는 ‘외계의 생명체’가 기다린다. 붉은색 레드카펫처럼 강렬한 레드의 길이 연결되는 ‘바람의 길’에는 인생샷을 건지는 포토존이 있다. 금속파이프 사이로 불어오는 영월의 바람과 신선한 공기를 폐속 깊이 들이마시며 힐링하는 시간도 주어진다. 이곳은 2014년 술샘박물관으로 먼저 시작했다. 우리 전통술의 다양한 자료를 담고 있어 애주가라면 눈이 번쩍 뜨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술과 전원풍경의 만남 남원 시립 김병종미술관
‘춘향’의 고장 전북 남원. 이곳에 지난해 3월 남원 시립 김병종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춘향테마파크 뒤쪽 함파우길에 자리한 미술관은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의 대표작 400여점을 기증 받아 만들어졌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함파우 마을과 아득하게 이어지는 지리산 노고단 능선을 조망하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도 치유된다. 남원 지역 미술 작가 36인의 작품으로 꾸민 ‘남원 미술, 요즘’이 내년 1월 27일까지 전시된다.


미술관 근처 이백면에는 카페와 정원이 어우러진 아담원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는데 아담(我談)은 ‘나와 나누는 대화’라는 뜻.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에서 지리산을 감상하며 나만의 사색에 푹 빠지기 좋다. 카페 앞마당에는 1000여종의 식물이 겨울을 버텨나가니 햇볕 좋은 날이면 여유있게 걸어보자. 정원을 따라 죽연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아담길’에서는 중국단풍, 소나무, 편백, 조팝나무를 만난다.



#재미있게 즐기는 부산현대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은 지난해 6월 개관한 공공 미술관이다. 외관부터 독특한데 식물이 수직으로 자라게 하는 정원으로 꾸몄다. ‘수직 정원의 거장’ 패트릭 블랑의 작품으로 하늘을 날며 숲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런던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 : 아웃 오브 컨트롤’이 큰 인기다. 기상천외한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 ‘레인 룸’ 때문인데 사진 촬영의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지만 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반지름 1.8m 내에는 비가 내리지 않도록 고안됐다.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지하 1층에는 을숙도 갈대숲을 모티프로 한 어린이예술도서관도 마련됐다.


#110년 동안 닫힌 문을 연 용산공원갤러리
용산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외국군이 주둔한 곳으로 굳게 닫힌 금단의 땅이었다. 지난해 11월 용산기지 반환에 앞서 용산공원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용산은 110년 만에 우리품에 안겼다. 용산공원갤러리는 용산기지와 한강대로를 사이에 둔 캠프킴 부지에 조성됐다. 미군위문협회(USO)가 사용하던 건물을 전시와 체험 공간으로 꾸몄는데 일본군이 조선육군창고로 쓰던 단층 건물과 1978년 미군이 증축한 2층 건물을 연결했다. 용산기지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지도와 위문공연을 온 메릴린 먼로, 데비 레이놀즈 등 할리우드 여배우의 당시 사진,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패티김, 김시스터즈, 조용필 등의 옛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영월=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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