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의 일부인에서 표시된 날’이라는 문구가 있다. 무슨 의미일까? 우편물의 내용 중 일부와 관련된 내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부인(日附印)’은 도장의 한 종류이다. 편지나 소포 등 우편물을 부칠 때 날짜를 표시하기 위해 찍는 도장이 바로 ‘일부인’이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이름만 봐선 어떤 물건인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일부인’이 유달리 낯선 한자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 단어가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고,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그날의 날짜를 찍게 만든 도장’을 가리키는 ‘일부인’을 우리말인 ‘날짜도장’으로 고치면 훨씬 더 직관적이고 알기 쉽다.

일반 국민은 물론 전문가, 매일 같이 법령을 접하는 법제처 직원에게조차 법령은 쉽지 않다. 법령이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법령 속에 있는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본식 용어가 있다.
일본식 용어는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용어를 말한다. ‘거래선(去來先)’이 그 예이다. ‘거래선’의 ‘선’은 일본에서는 ‘목적지, 장소’를 의미하지만, 우리 한자로는 ‘우선’을 의미하므로 뜻을 풀면 어색해진다.
이 외에도 ‘가도(假道)’나 ‘레자’도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다. ‘가도’의 접두사 ‘가(假)’는 일본에서는 ‘임시’를 뜻하는 말이지만, 우리말로는 ‘가짜’를 뜻하므로, ‘임시도로’라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 ‘레자’는 일상에서 ‘인조가죽’이란 뜻으로 사용되지만, 원어인 ‘레더(leather)’와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다.
이처럼 우리 언어생활에 맞지 않고, 일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일본식 용어는 이에 대응하는 우리말이나 쉬운 한자어 등으로 적절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법제처는 2014년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법령 속 일본식 용어 정비를 추진했다. 위에 언급된 용어를 포함해 ‘구좌, 부락, 계리, 미불’ 등 일본식 용어 37개를 선정하고, 이를 ‘계좌, 마을, 회계처리, 미지급’ 등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정비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아직 우리 법령에는 일본식 용어가 남아 있다. 일본식 용어 상당수가 이미 우리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제처는 2020년 또 한 번의 일본식 용어 정비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정비보다 좀 더 세심하게 법령을 들여다보려 한다. 정비 대상인 법령 속 일본식 용어를 선별하기 위해 국어, 일본어, 법률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을 하는 등 용어 정비를 위한 걸음을 내디뎠다.
올해로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7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잔재가 법령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문제다. 일본식 용어 정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협조가 필요하다. 법령을 만들고 집행하는 각 기관과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법령 속 우리말이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 초 ‘말모이’라는 영화가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상영됐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말을 다시 한 번 깊게 새겨야 할 때다.
김형연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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