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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에서 ‘주방의 스타’로… 베이킹소다의 충격고백

입력 : 2019-12-14 12:00:00 수정 : 2019-12-14 21: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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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大器晩成)’

 

나의 인생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과거의 난 슬프게도 철저히 조연이었어. 빵이나 과자 따위를 부풀릴 때 한 티스푼 정도나 들어갔을까. 어린 시절 설탕을 국자에 담아 ‘달고나’ 만들 때 기억나? 흰 가루를 손톱만큼 넣으면 반죽이 부풀어 오르며 연갈색이 됐잖아? ‘그 흰 가루가 바로 나’라고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면 그제야 알아보고 ‘아!’ 했어. 그땐 내 이름을 말해도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는 건 예사였고, 자존심 상하게 이름이 비슷한 친구인 ‘베이킹파우더’와 헷갈리기도 하더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긴 무명시절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살림 계의 ‘슈퍼스타’가 됐지. 이젠 오븐 안을 넘어 화장실, 거실, 신발장 등 날 안 부르는 곳이 없다니까. 내 본명은 탄산수소나트륨(NaHCO3), 활동명은 바로 ‘베이킹소다’야.

 

내 인기가 커진 건 나의 재능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부터야. 내 고운 가루가 오염물질을 흡착하고 연마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게 알려졌거든. 거기다 먹을 수 있는 재료니 아무래도 환경도 덜 오염시키고 일반 화학 세제보다 몸에도 덜 해로울 거라고 생각한 거지. 나를 가열하면 탄산나트륨, 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거든.

 

주부들은 나를 청소용으로 가장 많이 써. 그릇을 닦을 때 세제 대신으로 나를 뿌리면 거품 없이도 뽀득뽀득해져. 계면활성제 걱정이 없는 대신 오래 헹궈내지 않으면 표면에 흰 가루가 남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

 

싱크대, 세면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뿐 아니라 욕실 바닥 등을 닦을 때도 유용하지. 날 희석한 물을 뿌리고 수세미로 열심히 닦으면 돼. 빨래할 때도 날 한 스푼 넣고 세탁기를 돌리면 더 깨끗해져.

 

내 미세한 가루가 흡착 효과가 있다고 했잖아? 냉장고와 신발장의 퀴퀴한 냄새까지 빨아들여 묶어놓으니까 탈취 효과도 좋아. 냄새 나는 신발엔 나를 넣고 한참 후에 빼면 냄새가 덜해지지.

 

연마 능력 덕에 은 제품을 세척할 수도 있어. 나를 녹인 물에 색이 변한 은을 30분 정도 넣어놨다가 천으로 닦으면 반짝반짝해져.

 

아 참! 날 청소용으로 쓸 땐 제과용인지 청소용인지 꼭 잘 확인해야해. 가끔 제과용엔 밀가루가 소량 함께 들어있기도 해서 이런 걸 청소용으로 썼다간 일만 더 벌이게 될 거야.

 

약염기성이라 신김치나 신초고추장에 날 넣으면 신맛을 줄일 수 있어(맛은 보장 못 해). 해외에선 위산과다로 속 쓰릴 때 제산제 용도로 나를 탄 물을 마시기도 하는데 굳이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솔직히 약을 먹는 게 나아.

 

큰 인기 덕에 마트 베이킹 코너 구석이던 내 자리도 청소용품 코너의 목 좋은 자리로 옮겨갔어. 날 첨가한 세제들도 우후죽순 나오며 소비자들을 유혹하지. 이름이 ‘베이킹’ 소다인데 참 세상일이 재밌다 싶어.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은 날 ‘만능 재주꾼’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요즘 내겐 말 못 할 고민이 있어.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사실 내 업적은 과대평가 됐어… 이 자리를 빌려 인정할게.

 

내 성공 신화의 발판이 됐던 ‘마법 세제’ 사건을 기억해? 나와 식초를 섞으면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나며 소독 효과가 뛰어난 세제가 된다는 주장이 TV를 통해 퍼졌거든. ‘촤아아’ 소리를 내며 거품이 마구 일어나니 신기해 보였을 것 같긴 해.

 

그런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나는 약염기성인데 산성인 식초나 구연산이랑 섞으면 그냥 서로 상쇄되고 마는 거야. 그나마 내게 있는 세척력까지 없애버리는 거거든. 거품’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리고 난 살균이나 소독 효과도 없어.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로 과일이나 채소의 농약을 없앨 수 없고 그냥 물로 닦는 게 제일 효과적이래.

 

원래 뭐든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잖아. 나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기보단 적절한 용도로 적당량 쓰길 바랄게. 날 찾아줘서 고맙고 좋은 연말연시 보내길 바래. 

 

(※베이킹소다 1인칭 시점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사진=클립아트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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