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의 문화사 / 김풍기 / 느낌이있는책 / 1만5000원
임금부터 사대부, 민초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 인간사를 풍요롭게 이끈 19가지 선물 이야기를 담았다. 상대에게 소용될 것 같아서, 좋은 물건이 생겼기에, 격려나 위로 등 특별한 뜻을 담아, 아니면 그냥 보내온 선물은 그 시대를 들여다보는 유용한 창이다. 모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 아이템이다.
지조 있는 양반 가문에서 칼을 선물로 보낸 경우가 더러 있다. 도검이라고 해서 반드시 호신용이나 살상용으로만 사용된 건 아니다. 사물을 베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그 때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졌다.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어서 가장 선호되었던 것은 사인검(四寅劍)이다. 육십갑자로 시간을 헤아리던 시절,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진 검을 사인검이라고 부른다. 아무 때고 만들 수도 없었다. 검은 만들 수 있는 때가 있었기에 제작도 쉽지 않았다. 재료와 장인이 있어도 시간이 맞아야 하기에 미리 계획해서 만들어야만 했다. 지금도 사인검이 잡귀를 물리치는 신묘한 힘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검에 비해서 예기도 뛰어나서 최고의 검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에는 예종이 체통을 벗어던지고 술에 취해 노래와 춤으로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나온다. 예종은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하면서 선물로 술잔을 슬쩍 끼워 주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앵무배(鸚鵡杯) 같은 술잔을 하사했을 때는 이 술잔에 술을 마시면서 한껏 즐기라는 당부의 의미가 있다.
18세기 전반 고급 선물로 통했던 화장품을 팔러 다니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분을 팔러 다니는 노파라 해서 ‘매분구(賣粉嫗)’로 불리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매분구는 한양의 노비로, 어렸을 때 용모가 아리따웠다. 이웃집 총각이 그녀를 좋아해서 유혹하려 했지만 응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총각에게 자신은 원래 천한 신분이지만 남의 집 담장을 몰래 넘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 부모님이 살아계시니 허락을 받으라는 것 등을 말해준다. 총각은 폐백을 갖추어서 청혼한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총각은 그녀를 사모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세상을 뜬다. 이 소식을 들은 그녀는 ‘내가 그 사람을 죽였다’면서 슬퍼한다. 그 총각에게 몸을 허락한 적은 없지만 마음을 허락하였으니, 그가 죽었다고 해서 어찌 마음을 바꾸겠느냐며 그를 위해 수절한다. 평생 혼인하지 않고 지내면서 연분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갔다. 이 기록은 바로 화장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점을 증언한다. 그만큼 화장품 수요자가 존재했다. 당시 화장품은 선물용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외출에 자유롭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하면 집으로 찾아오는 화장품 판매원은 여러 면에서 기다려지는 손님이었을 것이다.
이밖에 정조가 율곡 이이 집안에서 보관 중인 벼루를 보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벼루는 율곡이 생존 당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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