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관은 법에 따라 판결을 할 뿐, 정치적 결정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재경지법 법관 A)
“과도한 법관 흔들기는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 B)
최근 법관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 등이 잇따르고,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오명을 받으면서 사법부가 홍역을 앓고 있다. 대부분 법관 결정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다. 이외에도 담당 판사에 대한 기피신청을 하고, 대법원에 법관을 상대로 진정·청원을 넣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법관 탄핵을 외치기도 한다. 법조계는 고소·고발 등을 통한 과도한 법관 흔들기는 자칫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국 재판 담당 법관들 피고발…대법관들도 고발당해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관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이날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최근 동양대학교 총장 명의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불허한 송인권 부장판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하며, “(공소장 변경 불허는) 정 교수의 무죄라는 결론을 미리 해놓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에 검찰이 정 교수에게 사문서 위조 혐의를 적용해 지난 9월 처음 작성한 공소장과 지난달 11일 추가 기소한 공소장을 비교하며 “공범·일시·장소 등에서 모두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공소장 변경을 불허했다.
법관에 대한 고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이 지난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관련해 금융계좌 및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판사들을 직권남용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한변 측은 “해당 영장전담 판사들(피고발인들)은 직권의 행사에 가탁(거짓 핑계를 댐)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하게 검찰의 자본시장법위반, 배임 등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정당한 수사와 관련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법 소속 영장전담 판사들은 검찰이 지난 8월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이후 휴대폰 압수 영장 등을 연이어 기각했다고 주장했다.
대법관들이 고소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10일 민원인 A씨는 대법원이 자신의 재판을 심리불속행기각 형태로 서둘러 종결했다며 사건을 담당한 권순일·이기택·박정화·김선수 대법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법관 기피신청, 진정·청원 건수도 ‘껑충’
법관을 상대로 한 기피신청과 대법원에 담당 판사에 대한 진정·청원 건수도 껑충 뛰었다. 특히 이 같은 추세는 지난해부터 도드라졌다.
이날 본지가 확인한 ‘전국 지방법원 기피·회피 및 위헌법률심판 신청 현황’에 따르면 2018년 전국 지방법원 내 기피·회피 신청 접수 건수는 752건으로 전년도 694건 대비 증가했다. 기피·회피 신청건수는 2014년 1041건을 기록한 이후 매년 감소했지만 2017년 이후 반등했다. 기피는 피고인이 담당 판사 교체를, 회피는 법관이 배당된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 요청하는 절차다.
법관 상대 진정·청원 건수도 최근 들어 크게 반등했다. 대법원에 접수된 법관을 상대로 한 진정·청원 건수는 2016년 1476건까지 떨어졌지만 2017년 3644건으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4606건을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4606건 중 4374건이 재판결과·진행에 대한 불만이다. 올해 상반기의 경우 2080건에 달하는 진정·청원이 대법원에 접수됐다.또 이중 1653건(79.5%)는 재판결과·진행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외에도 특정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해당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청원 글들이 속속 올라온다.
법조계에선 과도한 법관 흔들기는 자칫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날 “고소·고발, 진정과 청원 등으로 드러나는 국민이 가진 법관에 대한 불신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과도할 경우, 법관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서초동 15년차 변호사는 “사법부 독립성 보장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왜 국민이 법관을 고소하고, 진정·청원을 넣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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