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군을 침몰시키자(Sink Navy)!”
“육군을 때려눕히자(Beat Army)!”
미국 육군사관학교 대 해군사관학교의 아메리칸풋불 시합이 14일(현지시간) 열리는 가운데 미 육군 및 해군의 장외 응원전 열기가 뜨겁다. 비록 사관생도들끼리의 경쟁이고 매년 1회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육군 대 해군’의 자존심 대결로 인식돼 해마다 시합 날짜가 다가오면 육사 및 해사 재학생과 동문은 물론 육·해군 전체 장병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한국으로 치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두 사립대인 고려대와 연세대 간의 ‘연고전’에 견줄 만하다.
미 합참은 경기를 하루 앞두고 수도 워싱턴 국방부 청사(펜타곤)를 방문한 해사 군악대가 마크 밀리 합참의장(육군 대장)과 만난 사진을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3일 게재했다.

사진 중에는 밀리 의장과 염소 탈인형을 뒤집어 쓴 해사 생도가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있다. 염소는 미 해사의 마스코트로 아메리칸풋볼을 비롯한 각종 운동 경기에서 해사를 상징한다.
육군 대장인 밀리 의장은 육사 졸업생이 아니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 학생군사교육단(ROTC) 과정을 이수했다. 어째든 그도 육군 출신인 만큼 ‘육군 대 해군’의 대결 구도를 익살스럽게 연출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합참은 미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한데 묶은 ‘합동군’ 개념을 강조하는 곳인 만큼 특정 군종의 편을 들어줄 순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밀리 의장은 “미합중국 해군도, 육군도 모두 파이팅(Go U.S. Navy and Go U.S. Army)!”이라고 응원한 뒤 “다만 시합이 끝난 뒤에는 우리 모두 합동군이란 하나의 팀(one Joint Force team)이 돼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 육사 대 해사의 아메리칸풋볼 시합 역사는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차 세계대전처럼 미군이 참전한 전쟁 기간에 임시로 중단된 것을 제외하면 매년 꾸준히 열렸다. 1940년대 공군 창설 이후 공군사관학교도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육사 대 공사, 또는 해사 대 공사 경기는 아무래도 ‘흥행’이 떨어진다. 육사 대 해사 시합을 진정한 라이벌 대결로 여기는 이가 많다.
일단 두 학교 생도들 간에 게임이 시작되면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다. 육군 원수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1953∼1961)을 지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육사 생도 시절인 1912년 해사와의 아메리칸풋볼 경기 도중 무릎을 다친 경험이 있다. 그는 훗날 “미 육군과 해군은 1년 365일 가운데 364일 그리고 12시간은 가장 좋은 친구로 지내는데 딱 하루 아메리칸풋볼 시합이 열리는 날 오후만 되면 최악의 적으로 돌변한다”고 말했다.
경기 결과 면에선 2000년대 들어 해사가 육사를 압도했다. 2002년 육사에 이긴 해사는 2015년 21대17로 승리했을 때까지 무려 14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전세가 뒤집혔다. 그해 해사를 21대17로 누른 육사는 2017년 14대13, 지난해 17대10으로 계속 이겨 3연승을 달리는 중이다. 올해 시합에 나서는 해사 생도들은 3연패를 설욕하고 육사의 4연승을 저지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떠안은 상태다.
해사 대표선수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건 얼마 전 플로리다주 펜서콜라 해군 항공기지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으로 해군 장병 3명이 희생된 점이다. 순직자 중에는 올해 5월 해사를 졸업하고 임관한 조슈아 왓슨 소위도 있다. 왓슨 소위를 기억하는 후배 생도들은 유니폼 또는 응원복에 펜서콜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의 휘장 등을 착용할 예정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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