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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 배다리 현대적 해석… 한강다리 위에 ‘백년다리’로 재현”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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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7 03:30:00 수정 : 2019-12-06 20: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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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건축가 권순엽이 말하는 ‘건축과 재생’ / 국제공모전 당선된 한강 ‘백년다리’ / ‘화성 방문자센터’ 獨 아이코닉 어워드 / 백년다리의 베이비 프로젝트였던 / 화성 ‘워터워크’도 레드닷 어워드 / 대목수 할아버지 덕에 현장이 놀이터 / 뒤늦게 떠난 하버드 대학원 유학선 / 전공 다른 학생들 다같이 모여 토론 /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자극 얻었죠 / ‘재생’이란 과거서 미래로 통하는 것 / 무조건 부수고 새 것 세우는 것보다 / 있는 그대로 살려서 생명력 넣는 일 / 생각하는 건축가로 더 욕심 냅니다

올해는 참 의미 있는 해입니다. 한강대교 남단 공중보행교인 ‘백년다리 국제공모전’에 당선작으로 뽑힌 데 이어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대회인 독일 ‘아이코닉 어워드’에서 건축분야 대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 앵커시설 8곳 중 하나인 회현동 마을카페 ‘계단집’에서 지난 3일 국내외 건축설계 공모전을 휩쓸고 있는 젊은 건축가 권순엽(43) SOAP 디자인스튜디오 대표를 만났다. 세계적으로 건축가의 나이가 60∼70세일 때 걸작을 많이 내놓는 것을 보면 권 대표는 소장파에 속한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상복이 많다. 일 년에 서너 개씩 국내외 상을 받았다.

할아버지로부터 건축 관련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목수였다. 단순히 집을 짓는 목수가 아니라 건축물의 기획과 설계·시공을 맡는 역할까지 하는 대목수는 지금으로 보면 건축가였던 셈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서 20년을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집 짓는 현장에 가곤 했다. 경험적으로 공간적인 체험이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고등학교 때는 건축설계보다 손재주가 있어 뭐든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대학생이 출연해 ‘밤새우며 집을 설계하고 있다’는 얘기에 꽂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건축설계에 푹 빠져 지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건축설계에 나섰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인접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발로해 가구 디자인과 웹디자인 실무경험을 쌓았다. 주변에서는 건축설계를 그만두고 딴 길로 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제대로 된 건축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몰두했다. 한창 일할 시기에 그는 설계도 중요하지만 해외 문화를 접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설계회사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유학 생각뿐이었다. 그는 과감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버드에서의 경험은 충격이었다. 대학원생 600∼700명이 계단식의 개방된 공간에서 강의를 듣고 생활했다. 건축, 조경, 도시, 공업디자인 등 전공이 다르지만 모두가 한곳에 모여 생활하는 방식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직간접으로 소통할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졌다. 이해와 관심을 통해 하나의 영역으로 만들었을 때 가치가 커지고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대학원 과정에서 배운 소통과 협력은 그가 현재의 건축·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비록 관심과 전공이 다를지라도 같이 모여서 자기 생각을 주고받으며 작업을 할 경우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환경디자이너, 건축사, 큐레이터, MBA 출신 등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스튜디오 내에 건축과 디자인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으며 디자인건축미술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그의 건축철학은 스튜디오 이름인 비누(SOAP)와 같다. 비누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본래 모습은 사라지지만 그 가치는 남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비누 같은 모습이 그의 지향점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건축설계에 뛰어들었을 때는 건축가로서 사회에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면 현재는 건축 디자인을 통해서 삶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비누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그는 맡겨진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프로젝트를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고 항상 즐겁게 추진한다.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주변 풍경 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나간 것이 좋은 평가를 얻고 그것이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가 경기 화성 제부도에 만든 ‘워터 워크’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IDEA’와 ‘레드닷 어워드’를 안겨준 작품이다. 하루 두 번 바닷물이 갈라지는 물길 시작점부터 바다 위 44m 길이로 설치된 워터 워크는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은 물론 바다와 갯벌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체험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전망대와는 다르며 새롭다.

올해는 화성의 오래된 보건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소한 ‘화성 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로 독일 디자인위원회가 주관하는 아이코닉 어워드의 건축분야 대상을 받았다. 그의 건축설계 실력은 대학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001년 제7회 이상건축상에 가작으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제20회 대한민국 건축대전과 건축학생공모전에 각각 입선과 특선으로 뽑혔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 7에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인 IDEA, 레드닷어워드, IF를 모두 받는 등 20개의 굵직한 국내외 공모전 수상경력을 기록했다.

올해 그는 서울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백년다리 국제공모전’에 ‘투영된 풍경’설계안을 출품해 국내외 내로라하는 설계회사를 제치고 당선작으로 뽑혔다. 설계안은 조선 정조시대 배다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보행자 전용다리다. 배다리는 정조가 수원행차 때 한강을 건너기 위해 작은 배를 여러 척 띄어놓아 만든 한강 최초의 인도교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어 큰 의미를 갖게 한다. 도심 속 다리 위에 공원 모습의 다리가 놓여 한강의 풍경과 도시의 경관, 한강의 석양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상했다. 백년다리를 보행 기능뿐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벤치, 전망테라스, 선베드 등을 설치해 한강의 풍경을 온전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는 제부도에 만든 워터 워크가 백년다리 베이비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그가 추진하는 건축 프로젝트의 큰 축은 ‘재생’이다. 이번 백년다리도 옛 다리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재생에 속한다. 대학 졸업작품도 국내 최초 상설 영화관인 단성사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하버드디자인대학원 졸업작품 또한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을 개·보수해 가치를 극대화하는 리노베이션이었다. 귀국 첫 작품으로 만난 소다 미술관은 그가 재생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짓다가 만 흉물스러운 대형 찜질방을 기존 골조를 살리고 찜질방의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지역의 명물로 재탄생시켰다. 이 미술관 재생프로젝트로 한국건축가협회상 등 4개의 상을 받았다.

백년다리 조감도

재생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요즘 재생이 유행처럼 되다 보니까 기능과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재생을 요구하는 건축주가 많이 생긴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향성과 역할을 고민해 재생 여부를 결정해야지 무조건 재생하고 문화예술을 콘텐츠로 하는 천편일률적인 방식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하드웨어보다 콘텐츠에 맞춰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야 성공한 재생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유학 시절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실력 있는 건축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성취욕이 크고 동기생보다 뛰어나야겠다는 부담감은 되레 그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또 다양한 학부 전공을 가진 동기들이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전문가로 성장한 뒤 발표하는 결과물은 건축을 전공한 자신이 봐도 놀랄 때가 많았다. 그때부터 그는 단순한 스킬에 의존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뱄다. 손에 의존하는 건축설계가 아니라 생각에 의존하는 작업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다그친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야근이 없다. 흔한 밤샘 작업도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구시대 잔재가 됐다. 학창 시절 학점이 높으면 설계를 포기했다는 평가가 당연시되고 질보다는 양으로 평가받던 모습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요즘은 조경에 왠지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추구했던 일을 밑바탕 삼아 제대로 된 건축물 설계를 하고 싶다고 했다. 건축사무소의 기능을 강화해 건축다운 건축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국내외 공모전을 휩쓴 그가 작심하고 제대로 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의욕에 차기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권순엽은

 

△1976년 서울 출생 △인하대 건축공학과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건축 석사 △소다미술관, 부산 연지동 북하우스, 제부도 워터 워크, 세곡동 사이마당집, 화성 3·1 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등 설계 △한강대교 공중보행교 국제현상설계 당선 △한국건축문화대상, IDEA·IF·레드닷 어워드, 독일 ‘아이코닉 어워드’ 건축분야 대상,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등 수상 △SOAP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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