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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돈” vs “최소한 안전망”…청년복지 대책, 현금 수당이 최선인가 [심층기획 - '눈덩이 현금복지' 해부]

입력 : 2019-12-04 06:00:00 수정 : 2019-12-04 13: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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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찾기’ 효과 불분명… “직업교육 등 병행 바람직” / / ‘청년수당’ 놓고 찬반 팽팽 / “취업 교육 등 지원 늘려야” / 실력·스펙 등 취업에 작용 변수 많고 / 시행 얼마 되지 않아 정량 지표 없어 / 서울시, 2020년 초 비교 분석결과 내놔 / 청년 참여자들 ‘취업 성공’ 자체보다 / 마음 여유·자신감 회복 등 효과 꼽아 / 전문가 “근로 의욕 저하 부작용 우려” / 교육훈련 등 실질적 지원 요구 확산 / 수당 지속땐 재정부담 가중도 불가피 / “정부, 복지제도 큰 틀서 통합 관리를” / ‘취업 지원’ 목표 타지자체와 성격 달라 / 전북은 청년 유출방지 목적 정착지원금 / 서울시 ‘3년간 10만명’ 계획 찬반 논란

“올해 50만원을 받았습니다. 공짜로 받은 돈이라 친구들과 술 먹을 때 쏘기도 하고 내 돈 주고 먹기는 아까운 비싼 저녁에 썼어요. 그런데 수입이 많은데도 무조건 돈을 주는 정책은 역차별 아닌가. 세금을 너무 막 쓴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돈을 받는다고 생계가 나아지거나 나아질 기회가 될 것 같진 않거든요. 아무 활동을 하지 않고 돈이 생기니, 내가 번 돈에 비해 가볍게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 돈이 다 세금인데, 세금은 꼭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24세 박모씨·경기도 광명시·자영업)

 

“25만원을 받아 가족과 식사하고 부모님 선물을 사거나 데이트할 때 사용했어요. (이 정책을 듣고) 획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땡 잡았다’ 싶었죠. 분기별 25만원이라는 금액은 대학생과 취준생들에게 정말 딱 희망이 되는 액수 같아요. 구직 의지가 해이해지기에는 적지만, 어쩌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기에는 큰 금액이니까요. 저도 카페에서 자소서를 쓸 때 큰 도움이 됐어요. ‘나라에서 우리 청년들을 지원해주고 있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정책이 있어서 너무 힘이 되고 든든해요.”(25세 황모씨·경기도 고양시·마케팅 업계 종사)

올해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을 받은 20대들의 소감이다.

 

3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경기도는 물론 고용노동부, 서울시, 부산시 등이 청년에게 현금 수당을 지급하면서 찬반 여론이 불붙고 있다.

 

한창 일할 젊은이에게 ‘공돈’을 준다는 반발부터 세금 낭비·포퓰리즘이라는 비난까지 줄 잇는다. 한편에서는 벼랑 끝에 몰린 청년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옹호론이 나오고 있다. 논란은 많지만 청년수당의 효과는 아직 ‘물음표’다.

전문가들은 국내 복지 여건상 현금을 주기보다 취업교육 등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를 싣는다. 청년수당이 장기화했을 때 뒤따를 도덕적 해이, 재정 부담 우려도 높다. 한편에서는 청년들이 졸업 후 1년 가까이 ‘백수’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수당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내세우는 청년수당의 1차 목적은 ‘취업 준비 지원’이다. 졸업 후 부모에게 손 벌리기 죄스러워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러다 보니 입사공부를 하지 못해 취업 경쟁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에 갇힌 청년들에게 ‘시간’을 벌어주자는 취지다.

◆취업률 제고, 효과 있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첫 취업에 소요되는 기간은 2005년 9.4개월에서 지난해 10.7개월로 점점 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청년수당이 취업률을 높였을까. 답은 ‘알 수 없다’다.

서울시가 지난해 참여자 3151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47.1%가 취업, 창업, 창작활동 등을 통해 ‘자기 일을 찾았다’고 답했다. 이들과 비슷한 처지이면서 수당을 못 받은 청년군과 비교·분석하지 않는 한 이 수치가 수당의 효과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취업에 작용하는 개인의 실력, 운, ‘스펙’ 등을 감안하면 변수는 더 많아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0월 청년수당 확대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청년수당 대상자들은 소득 수준이 낮아 (다른 취업 지원자들과) 출발선이 다르다”고 말했다. 부모 지원을 받아 각종 해외 경험과 인턴 경력을 쌓은 지원자와 대학 시절 생활비를 버느라 전전긍긍한 학생의 취업률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내년 초 대조군과의 비교 분석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당이 취업률을 향상시켰다고 말할 근거는 어차피 없고 더군다나 당장은 시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며 “정량적 지표로 공과를 논할 수 없다 보니 결국 복지서비스에 대한 각자 신념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청년수당이 가져다준 건 시간”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들 역시 ‘취업 성공’ 자체보다 사회에 대한 신뢰, 마음의 여유, 자신감 등을 회복한 것을 효과로 들었다. 서울시가 발간한 참여자들의 에세이 모음집 ‘청년수당이란 응원’에 자신을 3년 차 백수라고 밝힌 한예솔(가명)씨는 “(수당으로) 값이 비싸 그동안 주저했던 마카롱을 사 먹었다.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어 친구와의 만남을 거절했던 내가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며 “청년수당은 빨리 취직하라고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같이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현씨 역시 “국가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며 손을 내밀어 준 그 자체만으로 이 진흙탕에서 혼자 걸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줬다”고 했다. 이하영씨는 “여전히 높은 연봉이나 정규직은 나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며 “하지만 청년수당을 받은 이후 나는 어떻게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많은 참여자가 수당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줄이거나 조바심이 덜어져 삶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 ‘돈 때문에 주저했던 친구와 밥 한끼, 영화 보기, 전시회 가기, 돈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식사하기’ 등을 하며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다고 고백했다.

시행 초기의 이 같은 긍정적 효과가 지속할지는 미지수다. 청년수당이 생애 한 번쯤 당연히 받는 수당으로 굳어질 때가 문제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금 지급의 일반적인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라며 “현금이 공짜 돈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안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당은 연금처럼 기여한 후에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주어지기에 오히려 근로의욕을 꺾을 수 있다”며 “액수나 기간에 따라 달라지나 (해가 갈수록) 수당을 당연시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금과 서비스, 우선순위는

현재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이 현금 지급으로 넘어갈 단계인지, 교육훈련 등 서비스를 더 강화해야 할 때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정 교수는 “현재 우리 복지는 현금급여나 서비스 모두 낮은 상황”이라며 “그렇기에 복지 인프라·서비스부터 먼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 역시 “취업 지원 목적이라면, 교육훈련 서비스 등을 통해 청년들이 자신의 인적 자본을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일 것”이라며 “이 정도 수당으로 과연 청년에게 공평한 출발선을 제공할 수 있을지, 차라리 아동기에 빈곤 아동들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공평한 출발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지”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수당 때문에 당장 재정 부담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나 인구구조 변화를 생각하면 이런 현금성 급여 증가는 향후 재정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며 “유럽도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부터 수당을 받는 복지 수혜자를 늘리기보다 직업훈련을 거쳐 자립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고 전했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한국 역시 지금부터 정책 우선순위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에게 돈을 주는 건 직업교육, 저임금 보전 등 다른 선택지와 비교해 기회비용 측면에서 봤을 때 현명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지방·정부 따로 복지제도

청년수당이 복지제도의 큰 틀에서 논의되기보다 지자체별로 각개전투식으로 지급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교수는 “현금성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중앙정부가 하고 지방정부는 주민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서비스를 전담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복지시스템을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것 같다”며 “향후 정책이 바뀌어 현금 수당이 중단될 경우도 곤란하고, 지역별로 복지 편차가 생기면서 서울 집중이 더 심화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진짜 어려운 이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데 서울시가 중앙정부에 지하철 적자 보전을 요청하면서 한쪽에서 재정을 이렇게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을 초래한 사회 구조는 놔둔 채 현금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인가도 짚어봐야 한다. 정 교수는 “한국 사회가 어떤 복지사회를 지향할지 그림이 없다”며 “청년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는 인생주기가 과연 바람직한지, (학업 수준에 따라 직업 교육을 받는 독일 등처럼) 청년들의 삶을 재구조화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수당을 늘리는 건 이런 의미에서 포퓰리즘이고, 청년수당을 비난하는 이들도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지 무조건 현금복지는 안 된다고 하니 이것 또한 포퓰리즘”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현금 수당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청년복지가 필요하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가 공감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생활비가 부족해 일하느라 아르바이트에 치이고, 취업 준비도 안 되니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며 “이들이 졸업 후 취업까지 거쳐야 하는 고통의 시간을 조금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성남시 2015년 첫 도입… ‘기본소득’ 형태 수당 지급

 

청년 대상의 현금복지는 2015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처음 불을 댕겼다.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는 앞다퉈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고용노동부가 올해 시작한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다. 1581억원을 들여 8만명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게 목표다. 10월 말 기준 총 6만3304명이 혜택을 받았다. 내년에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 국민취업지원제도로 통합된다. 규모도 내년 9만명, 이듬해부터는 10만명으로 늘어난다.

 

이 지원금은 학교를 졸업·중퇴한 지 2년 이내인 만18∼34세 미취업 청년이 대상이다. 자기 주도적 구직활동을 하는 조건으로 6개월간 50만원씩 지급한다. 소득 기준은 중위소득 120% 이하로 4인 가구의 경우 약 553만원을 밑돌아야 한다. 유흥·도박 등에는 쓸 수 없는 ‘클린카드’ 형태로 나눠준다.

 

청년수당 논란을 크게 키운 지자체는 서울시다. 2016년 ‘박원순표’ 청년수당을 도입하면서 당시 박근혜정부의 보건복지부와 극심하게 대립했다. 올해는 향후 3년간 10만명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통 큰’ 계획을 발표해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3년간 투입하는 예산은 3300억원에 달한다. 이 경우 취업했거나 형편이 넉넉한 일부를 제외하고 수당이 필요한 청년 대부분이 생애 한 번은 혜택을 볼 것으로 서울시는 추정한다.

 

다른 지자체가 ‘취업 지원’을 주요 목표로 내세우는 것과 달리 경기도는 기본소득의 형태로 청년들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2015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청년배당’의 형태로 도입했고 이후 경기도로 확대됐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만 24세 청년으로 도내에 3년 이상 연속 또는 합산 10년 이상 거주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1인당 연간 최대 100만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한다.

 

부산시는 2017년부터 미취업 지역 청년들을 지원하는 ‘부산청년 디딤돌카드+(플러스)’ 사업을 벌여왔다. 미취업 구직자에게 포인트 형태로 ‘사회진입 활동비’를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 동안 지원한다. 올해는 600명이 혜택을 봤으나 내년에는 2000명으로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예산도 올해 18억원에서 내년 60억원으로 늘어난다. 부산시는 저소득 청년이 아르바이트 대신 구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당을 도입했다.

 

인천시도 구직활동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청년수당 사업을 시작했다. 매달 50만원씩 6개월간 쓸 수 있는 돈을 체크카드 형태로 지급한다. 올해 280명이 지원받았다.

 

전북은 유일하게 사업 성격이 다르다. 구직자가 아닌 취업 1년 차 이상 청년에게 정착지원금을 지급한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도록 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북 인구 이동을 보면 20대 초반부터 25세까지 가장 많이 (다른 지역으로) 나가고 있다”며 “구직수당을 줄 경우 수도권에서 취업 준비를 하기에, 이런 방식보다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에 주로 근무하는 지역 청년들의 소득을 보전해줘 전북에 삶의 터전을 잡도록 하자는 취지다. 올해 8월부터 431명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월 30만원씩 1년간 총 360만원을 포인트 형식으로 준다.

 

송은아·이희진·이동수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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