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71~73대)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교도통신은 이날 나카소네 전 총리가 타계 소식을 전했다. 1918년 5월 27일 군마(群馬)현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1941년 옛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종전 직후인 1947년 28세 때 중의원에 처음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후 당시부터 20회 연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하며 정계은퇴까지 20선 의원을 지냈다.
아베(安倍) 내각, 사토(佐藤) 내각, 요시다(吉田)과 고이즈미(小泉) 내각 이어 전후 5번째 장기정권(4년 11개월)을 이끌었다. 지난해 5월27일 100번째 생일을 맞아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서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 稔彦, 1887~1990)에 이어 두번째로 장수 총리로 이름을 올렸다.

1959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내각에서 과학기술청 장관으로 입각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계 생활을 시작했다. 통산상, 자민당 간사장 등을 거쳐 1982년 11월 제71대 총리를 맡았다. 이후 73대까지 연속으로 재임했다. 그는 총리 취임 후 ‘전후 정치의 총결선’을 자임하며 교육기본법 재검토, 자학사관 재검토, 민영화 추진 등을 추진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후인 1989년 5월 일명 ‘리쿠르트 스캔들’에 연루되어 중의원 예산위에 증인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한 후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2년 만인 1991년 복당하기도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1937∼2006) 총리 시이던 1996년 지역구를 내놓으면서 종신 비례구 1번을 보장받았다. 2003년 1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중의원 비례대표 73세 정년제’를 앞세워 사실상의 퇴진을 권고하자 85세 당시 그는 중의원 선거 출마를 포기하며 56년간의 의원 생활을 접고 은퇴의 길을 선택했다.

우익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며 재임 기간에 태평양전쟁을 이끈 A급 전범 등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며 한국과 중국에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는 1985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을 기해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로서 최초 공식 참배했다. 1994년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쟁범죄에 관한 사죄 결의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하며 우익 정치인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은데, 박정희 정부 당시였던 1960년대 초반 통상장관을 맡아 한일 양국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대 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함께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했다. 방위비증액과 자위대 전력을 크게 증강 시킨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1983년 현직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총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지원에 합의했다.
재계 인사와도 친분이 있는데,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와도 관계가 돈독해 1990년 잠실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 및 1997년 롯데호텔 부산 개장식에도 참석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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