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당당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자신감 없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위축되지 않고 좀 더 당당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 20일 국회 심상정 의원실에서 만난 이자스민(42) 전 의원은 한국 사회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다문화가정 부모들이 먼저 당당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필리핀 이주여성 출신으로 귀화한 이 전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지만 20대 국회에선 공천을 받지 못했다. 2년 이상 외부활동을 자제하던 이 전 의원은 지난해 한국문화다양성기구 이사장 등을 맡으며 기지개를 켰고, 최근 심상정 대표의 권유에 힘입어 정의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 전 의원은 “의원 임기를 마친 뒤에도 ‘꿈드림학교’ 교장을 하면서 다문화 2세 관련 일을 계속해 왔다”며 “아이들이 더 자신감 있게 사회에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차별이라는 걸 잘 모를 때에는 그게 차별인지 모르고 넘어가지만 성인이 된 다음에 ‘내가 어릴 때 당했던 그게 차별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차별받는다는 것을 일찍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면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등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치 재개 기사에 대한 악성 댓글 등) 저한테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봐도 우리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고 느꼈다”며 “꿈드림학교를 운영하면서 대화를 나누면 언어·문화적 장벽은 적응할 수 있겠는데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의 부실한 다문화정책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앞두고 부산에서 아세안포럼을 하나 열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제가 처음 온 1995년과 지금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라며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도 생겼지만 일선 지역에서 체감을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이런 이유에 대해 정책집행자들이 다문화 당사자가 아니어서라고 판단했다. 그는 “중앙정부에 다문화정책을 체감하는 사람이 없어서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라며 “언론에서도 이주여성이 도망가고 하는 내용 위주로 다뤄서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고 강조했다. 전국 각 기초자치단체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기는 등 사회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정작 다수 예산이 지원센터 자체를 운영하는 비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데 따른 것으로 지적된다.

이 전 의원은 제19대 국회 시절로 돌아가면 더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이었고 눈치를 보느라 못한 일이 많아서였다. 그는 “이민사회기본법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등을 추진했는데 그때에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라 너무 조심스러웠다”며 “하지만 제가 다시 나서니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민청’ 관련 언급이 나오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하면 여당에서도 관련 공약이 더 풍부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자스민법’으로 불린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던 법안으로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준수하자는 내용의 법안이었는데도 불법체류자를 폭증시킨다는 오해 탓에 국회에서 외면받았다. 이 전 의원은 “이민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 직속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며 “어떤 정책이 잘 되는지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한데 국무총리실에 있는 위원회들에서는 형식적으로 1년에 회의 한두 번 하고 부처들 정책을 들어보는 게 전부”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다문화 관련 질문도 상당 부분 나왔다. 이 전 의원은 “대통령이라고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다 알 수가 없다. 거기에 대해선 대통령이 본인이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대통령께서 그 말을 했기 때문에 다문화관련 정책 담당하시는 분들은 다 느꼈을 것”이라며 “우리가 이것(이슬람 자녀 군대 음식 등)에 대해서 대비룰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앞으로 정부에서 대비 할거라는 생각이고 기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유학생을 유치할 때 오라고만 하고 대비가 잘 안돼 있었다”라며 “무슬림 학생을 유치하려면 학교에서 기도 공간도 마련하고 할랄 음식도 준비해야 하는데 막상 데려왔더니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장 직함을 달았다. 앞으로 지역마다 조금씩 이주민 관련 현안이 다르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듣고 공약 등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의 총선 출마 여부도 화제로 떠올랐다. 이 전 의원은 24년간 살고 있는 서울 서대문에서 지역구 출마할 것인지를 묻자 “서대문에서 정치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우선은 당직을 성실히 임하고 이후 비례대표 출마 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전문가들도 많아지는 추세인데 ‘왜 이자스민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저는 경험을 살리려고 한다. 경험을 살리면서 계속 이어 나갔으면 한다”면서 “만약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저처럼 한발짝씩 시작을 해야하는데 다른 준비 돼 있는 사람이 생길 때 까지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고 소개했다.
최형창·안병수 기자 calli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