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해군부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한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 경질됐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대통령 스스로 뽑은 국방장관과 공군장관이 조기에 낙마한 데 이어 해군장관마저 짐을 싸게 되면서 펜타곤(미 국방부)이 술렁이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 육군 출신들은 국방부는 물론 다른 부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군부와 불화를 거듭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육군과는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해군장관의 업무 방식, 마음에 안 든다"
2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된 미 해군 특전단(네이비실) 소속 군인의 신병처리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온 리처드 스펜서 해군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후임에는 케네스 브레이드웨이트 노르웨이 주재 미국 대사가 곧바로 지명했다.

미 국방부는 육해공군의 ‘서열 1위’ 장성인 참모총장(현역 대장) 위에 민간인 신분의 육군장관과 해군장관, 공군장관을 각각 둬 민간인이 군인을 통솔하는 ‘문민통제’ 원리를 실현하고 있다. 단, 같은 ‘장관’이란 직함을 쓰지만 육해공군 장관은 국방장관보다 서열이 낮으며 업무에서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리처드(해군장관)의 복무와 헌신에 감사를 표한다”면서도 “에드워드 갤러거 원사(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된 네이비실 군인) 문제를 다루는 해군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경질 이유를 설명했다.
◆잇단 장관 낙마로 현재진행형 된 '펜타곤 흑역사'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백악관과 군부의 불화, 그로 인한 국방부 고위직의 잇단 낙마라는 ‘흑역사’는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남게 됐다.
당장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 1기 내각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사임했다. 해병대 대장 출신인 매티스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 의견을 무시하고 미군의 시리아 철군을 결정하자 사표를 냈다. 스스로 물러나는 형식을 취했으나 경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올해 3월에는 헤더 윌슨 공군장관이 역시 사임했다. 공군 장교 출신인 윌슨 전 장관은 ‘우주군(Space Force)’을 공군에서 독립시켜 육해공군과 대등한 별개 군종으로 만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완강히 반대하다 결국 사표를 냈다.
이번에 물러난 스펜서 해군장관은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메티스)과 공군장관(헤더), 해군장관(스펜서)의 잇단 낙마와 달리 육군 출신들은 현 정부 들어 일제히 출세가도를 달려 ‘트럼프 대통령이 육군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트럼프는 육군을 좋아해'… 군 요직 장악한 육군
먼저 매티스 전 장관의 후임자인 마크 에스퍼 현 국방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육군장관에 임명됐다가 국방장관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운 좋게’ 승진한 경우다. 에스퍼 장관 본인도 미 웨스트포인트 육사 졸업생으로서 육군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 후임 육군장관은 라이언 맥카시 차관이 승진해 이어받았다.

미군 전체를 통틀어 ‘서열 1위’ 장성에 해당하는 합참의장 역시 육군 차지가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조지프 던퍼드 의장(해병대 대장)의 4년 임기가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마크 밀리 현 의장을 후임자로 발탁했다.
밀리 의장이 육군총장에서 합참의장으로 영전하면서 공석이 된 육군총장 자리는 얼마 전까지 육군참모차장이던 제임스 맥컨빌 대장이 넘겨받았다. 미 육군 입장에선 에스퍼(육군장관→국방장관)부터 맥카시(육군차관→육군장관), 밀리(육군총장→합참의장), 맥컨빌(육군차장→육군총장)까지 그야말로 ‘승진 잔치’을 벌인 셈이다.
◆국무장관 폼페이오도 육사 졸업… '육군전성시대'
육군 출신으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잘 나가는’ 인물이 군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미 외교정책을 이끌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역시 육군 장교로 일하다 행정부 고위 관료로 옮긴 인물이다.

그는 에스퍼 국방장관과 육사 동기생이기도 하다. 미 정가에서는 폼페이오와 에스퍼 두 장관을 ‘웨스트포인트(육사) 마피아’라고 부르며 “웨스트포인트가 펜타곤(국방부)은 물론 외교(국무부)까지 주무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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