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는 단순하고 여자는 복잡하다.” 많은 이들이 흔히 갖는 생각이다. ‘여자의 뇌’로 베스트셀러 저자에 오른 미국 캘리포니아대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신경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이 책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농담을 던졌다. “얇은 책이 될 겁니다. 팸플릿 하나 정도 분량이나 되려나.” 그만큼 남녀에 관한 우리 문화에 넓고 깊게 뿌리 박혀 있음을 방증한다.
‘남자의 뇌’는 그간 단순할 것이라는 오해를 거부하고 남자의 뇌를 있는 그대로의 미묘하고 복잡한 악기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태아 때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성욕이 왕성한 성인 남자가 되고, 다시 배우자를 만나 아빠가 되고 성숙한 노인이 되는 과정 전체를 훑어봄으로써 남자의 삶에서 뇌가 얼마큼 영향력을 갖는지를 입증한다. 나아가 인간의 뇌가 엄청난 학습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뇌와 호르몬의 작용도 평생 주위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화를 겪는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책은 뇌와 호르몬으로 남자의 본심을 꿰뚫어 보고 있다. 저자는 “키스의 맛으로 사랑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혀가 닿자마자 서로의 건강과 유전자 정보가 곧바로 수집돼 각자의 뇌로 보내진다. 만약 키스할 때 시큼한 맛이 났다면 관계는 거기서 끝날 것이다. 둘은 너무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침에는 인체의 모든 분비선과 기관에서 나온 분자가 포함돼 있다. 과학자들은 남자의 침 속에 포함되어 있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여자 뇌의 성적 중추를 활성화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가 좋을 땐 한없이 좋다가도 종종 복잡해지는 이유는 또 뭘까. 저자는 “심리적인 이유 이전에 서로의 신체가 그리고 뇌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분쟁의 상당부분은 서로의 선천적인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에 발생한다. 책에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유전적, 구조적, 화학적, 그리고 호르몬과 뇌의 작동 절차에 관한 차이점과 남자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대화하는 방식의 구조와 자연스러운 욕구에 대해 제대로 알려준다.

저자는 특히 남자아이가 아동기 동안 부모와 얼마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는지는 관계없이 사춘기는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알던 아이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는 말이 사실이다. 테스토스테론을 맥주라고 치면 9세 남자아이는 매일 한 컵 정도를 마시는 셈이다. 하지만 15세에 이르면 하루에 7ℓ에 달하는 양을 마시는 꼴이 된다. 아이는 담배나 술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테스토스테론에 취해 있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를 어떻게 빨리 알아차릴까. 몸집이 큰 아이들이 대개 높은 지위를 차지하긴 하지만 가장 덩치 큰 아이가 항상 리더가 되는 건 아니다.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는 싸울 때 물러서지 않는 아이였다. 이 아이들은 도전자들을 위협하고 괴롭히고 두들겨 패면서 자기 힘을 과시했다. 무리의 모든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호르몬 검사를 해보니, 우두머리가 되는 남자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나왔다. 놀라운 사실은 7살이 될 무렵 무리에서 차지한 순위로 그 아이가 15살이 되었을 때 남자아이들 위계질서에서 차지할 위치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남자에게 갖는 모든 고정관념을 풀어줄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남자가 자주 하는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뇌과학적 근거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뇌 구조는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출생시나 아동기 말기에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 변한다. 만약 남자와 여자, 부모와 스승이 남자의 뇌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소년기에 어떻게 형성되는지, 중년과 노년기에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지를 깊이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남자에 대해 더욱 현실적인 기대를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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