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꼭 폐지까지 해야 하는 건지…”
7일 정부가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교육계 일각에선 이런 반응이 나왔다. 자사고는 2001년 김대중정부가 고교평준화로 획일화된 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고, 이후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아 문제점을 개선해 존치 여부를 결정해왔다. 정부 정책에 호응해 적법한 절차로 만든 학교라면 제도 보완을 통해 설립 취지를 살려 나가면 될 일이라는 뜻이다.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키우고”
‘6년 시한부’가 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처지는 문재인정부와 진보교육감들의 핵심 정책인 ‘혁신학교’와 대비된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한 학생 중심 교육을 강조하는 학교로, 자사고·외고·국제고와 마찬가지로 ‘교육 다양성’을 위해 도입됐다. 3∼5년에 한 번 재지정 평가를 받는 것도 같다.

두 고교유형 모두 ‘꼬리표’가 붙어있다. 교육 당국은 자사고·외고·국제고가 ‘교육생태계’를 교란한다고 규정했다. 특정 학교로 우수학생 쏠림현상이 나타나 일반고의 교육력을 저하시키고, 일반고 학생들의 자신감 하락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반면 혁신학교는 ‘기초학력 저하’ 우려로 학부모들의 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자사고는 42곳, 외고·국제고는 37곳으로 전체 고교 2356개교의 3.4% 정도다. 반면 혁신학교는 지난 9월 기준 총 1721곳으로 전체 초중고 1만1675곳의 14.8%에 이른다. 2009년 13곳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130배 넘게 증가했다. 교육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혁신학교가 더 크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법적 지위가 삭제될 예정이지만, 혁신학교는 꾸준히 지위를 유지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19학년도까지 5년간 재지정 평가를 받은 혁신학교 1012곳 중 탈락한 학교는 15곳, 1.5%에 그쳤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혁신학교는 육성 차원에서 유지하면서,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왜 취지를 살리도록 관리·지원하지 않느냐. 명백한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법원 판단 보니…“소송땐 결과 몰라”
교육계 일각에서는 과거 자사고 관련 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자사고·외고·국제고가 법적 대응에 착수면 일괄전환 여부가 불투명해진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2014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재평가를 통해 자사고 6곳을 지정 취소한 결정을 교육부가 직권으로 무효화한 데 대해 교육부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자사고 제도 운용은 국가 교육정책과 긴밀하게 관련되며, 자사고 지정 및 취소는 해당 학교 재학생과 입학 희망 학생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며 “자사고 지정 및 취소는 국가의 교육정책과 해당 지역의 실정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으로 침해되는 해당 자사고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신뢰 및 이익은 조 교육감이 지정취소로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괄전환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번지면, 교육부의 일괄전환 결정으로 얻는 공익보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피해가 크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불과 세 달 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고 사회적 논의과정 없이 폐지 결정을 통보해서다. 교육부는 지난 8월 자사고 지정취소 최종 권한을 놓고 시·도교육감과 신경전을 벌이던 당시 “평가를 통한 자사고의 단계적 일반고 전환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가 일괄전환 방법으로 ‘시행령 개정’을 택한 것도 헌법의 ‘교육법정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4월 헌법재판소가 교육부의 자사고 후기학교 배정 및 중복지원 금지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조용호 재판관은 “고교 제도 등 기본적 사항은 파급효과가 매우 크므로 국회가 직접 법률로 정해야 한다. 백지식으로 행정입법(시행령)에 위임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기석, 이종석 재판관은 이에 “향후 국회가 고교 종류 및 입학전형제도에 관해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것이 교육제도 법정주의에 보다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6항은 “학교 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 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국회 논의 절차 없이 행정부가 단독으로 고치는 시행령 개정으로 고교 종류 일부를 없애는 것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로 읽힌다.

◆정권교체땐 ‘도루묵’…‘강남 부활’ 우려도
가장 큰 문제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여부가 다음 정부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2022년 상반기에 들어설 차기 정권이 자사고·외고·국제고 관련 다른 교육철학을 가졌다면 시행령을 되돌려 이들을 존속시킬 수 있다.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 여부도 차기 정권 의지에 달려 있어,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교육정책에 혼란만 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남 8학군’ 등 이른바 ‘교육특구’ 선호 현상이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현재 정시 확대까지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수능에 대비에 노하우가 있는 소위 ‘명문 일반고’를 보내려는 학부모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