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하는 교무실에는 독일, 스페인, 러시아,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원어민 교사가 있다. 그러다 보니 회식할 경우 교무부장이 메뉴 선택에 대해 꽤 고민스러워한다. 그 이유는 원어민 교사 중에는 고기를 못 먹는 사람, 고기를 먹기 바라는 사람,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 사람 등 선호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각자 취향이 다르다 보니 메뉴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에 요즘엔 뷔페를 간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자리는 메뉴를 마음대로 골라 먹는 뷔페밖에 없다고 결론 지은 것이다.
어떤 일이든 찬성이나 반대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선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비록 선택지가 많다 해도 내게 맞지 않는 것만 나열돼 있다면 그것 역시 선택하기가 곤혹스럽다. 이로 인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든 결정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마다 다수결 원칙에 따른다. 다수결이 가장 공평하고, 빨리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다수결이 가장 공정한 선택 방법일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먼저 다수결에 따르는 결정방법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의견을 물었더니, 고등학생인 이들의 4분의 3은 ‘찬성’, 나머지는 ‘반대’였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많은 사람이 선택했으니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반대하는 이유는 ‘소수자의 의견이라 해서 반드시 잘못된 의견은 아니므로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러 영역에서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다수결은 언제나 반대 의사를 가진 소수의 사람을 만들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 있지만 동시에 소수파의 권리도 있다. 소수파는 잘못된 의견이 아닌 미래를 앞서 보는 눈을 가지고 있거나 특이한 아이디어와 발상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던 때에도 그랬다. ‘천동설’을 부인하면 교회가 무너질 것처럼 여겼었지만 지금은 ‘지동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같이 시간이 흐른 후 소수파의 의견이 진실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소수의 의견도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그래서 어떠한 토론도 없이 무조건 다수결로만 결정해버리면 민주적인 원칙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로 서로 양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회에는 이념 갈등, 지역 갈등, 기성 갈등, 인종 갈등처럼 많은 갈등이 있다. 비록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고 해도 다양성은 존중돼야 한다. 독자적인 문화나 가치관의 차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회를 더 풍요롭게 발전시킨다. 이에 다양성에 대한 사고를 어린 학생시절부터 갖게 하는 것이 점수 올리기 교육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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