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경제적으로 힘들고 절망감에 휩싸인 국민들이 ‘자유한국당 너네는 어떻게 잘할 건데. 비전이 뭐냐’라고 묻고 있는데 당 지도부가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의 진지함을 모르는 것처럼 비친다. 뼈를 깎는 쇄신을 하면서 국민들이 기대할 만한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에 (가뜩이나 비호감도가 압도적인) 제1야당이 뚜렷한 전략도 비전도 없이 잇달아 정치를 희화화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 볼 면목이 없다.”
자유한국당이 28일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에서 속옷만 걸친 문재인 대통령, 수갑을 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풍자한 것을 본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29일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도 하다. 여권의 아킬레스처럼 되어버린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국 주도권을 잡고 내년 총선 지형도 흔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어이없는 헛발질로 그 기회를 차버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 황교안 대표 체제 이후 한국당 지지율은 높아졌지만 이는 한국당 자체의 매력보다 문재인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 덕이 컸다. 그나마 좀 오르는 지지율도 ‘막말파동’ 등 당내 실책으로 까먹기 일쑤였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장관 카드를 밀어붙이면서 한국당은 호기를 맞이했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강경 보수층 일색인 지지층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비롯해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여권의 내로남불 등 진영 논리에 실망한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이 대거 문재인정부에 등을 돌린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한국당은 ‘역시나’였다. 조 전 장관의 사퇴가 마치 자신들의 공인양 표창장과 상품권 잔치를 벌이지 않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관련 피고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한 데 이어 한때 집권세력으로 국정을 책임졌던 제1야당의 품격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현직 대통령 비하 풍자쇼’로 많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 다른 야당과 한국당 내에서조차 “도가 지나쳤다” “선을 넘었다”는 쓴소리가 나온 상황에서 황 대표의 반응도 실망스러웠다. 황 대표는 문제의 영상에 대한 논란이 일자, “진의를 보고 판단해달라. 잘 알려진 동화로 여러분 다 익숙할 것이다”라며 “정부가 듣기 좋은 소리만 듣지 말고 쓴소리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저는 이해했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 대한 비판 여론의 본질을 애써 외면하는 듯해서다. 야당은 정부가 민생해결 등 국정운영을 잘하도록 견제하고 비판하면서 이를 위해 때로는 강경투쟁도 불사하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정권 탈환을 꿈꾸는 제1야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뿐 아니라 정부여당을 능가하는 국가경영 비전과 정책 능력, 쇄신 의지, 의정활동을 보여야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맨날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인상을 주는 데 그치고, 그마저도 정치의 품격을 스스로 훼손하는 식으로 하니 일부 극렬지지층을 제외하곤 여론 반응이 싸늘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호감을 가졌다가 등을 돌린 많은 사람이 한국당을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이다. 한국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까닭이다. 이번 문 대통령 비하 영상은 한국당이 비호감도 1위 정당을 굳히려고 작정한 것처럼 비쳐지는 대목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통화에서 “깜짝 놀랐다. 한국당에 정치의 품격까진 바라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너무 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지는 건 괜찮은데 이런 식의 대응은 한국당 스스로 전략 부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중도층 등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국민들도 한국당을 외면하게 만드는 행태가 반복되면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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