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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상무기’ 최루탄 어떻게 거리로 나왔나

입력 : 2019-11-02 11:30:00 수정 : 2019-11-02 1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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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후 사용 금지… 美 퇴역군인들이 부활 시켜 / 프라이스 장군, 시위 진압용 개발 제안 / “독성물질 아닌 무해한 진압용” 언론 홍보 / 휴대성·안전성 강화되며 세계 각국 확산

최루탄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1914년 8월 프랑스군이 독일군 참호에 투척한 것이 최초의 사용으로 알려져 있다. 방호벽이나 참호에 숨은 적군을 색출하기 위해 군사용 화학 무기로 고안된 것이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내내 연합군과 독일군이 최루탄을 포함한 인체에 치명적인 독가스를 주고받았다. 무수한 희생을 낳은 화학전에 대한 반성과 두려움으로 국제사회는 1925년 생물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 의정서를 채택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참호가 독일군의 가스 공격을 당한 모습.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

사라질 위기에 놓인 최루탄을 부활시킨 것은 미군의 퇴역 군인들과 군수업체 관계자들이었다. 특히 미국의 화학전 전담부서의 아모스 프라이스 장군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담당 부서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최루탄을 시위 진압용으로 개발해 평시에 사용하도록 고안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언론 보도와 광고를 통해 최루탄이 독성 화학물질이 아닌 무해한 시위 진압용 무기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제조업체들은 최루탄을 절도범, 교도소의 죄수, 은행 강도 등을 제압하기 위한 도구로 소개하며 신문과 잡지 등에 광고를 냈다. 이 당시 한 광고는 “이 제품은 개인을 무리로부터 격리하고, 고문의 근원(최루 가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맹목적으로 우르르 몰려가게 할 것”이라며 제품의 ‘효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대대적 홍보로 1920년대 말까지 뉴욕,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부분 경찰 부서에서 최루탄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였던 파나마와 하와이까지 이용 지역이 확대됐다. 최루탄은 이후에도 휴대성과 (발포자의) 안전성이 강화되며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확산했다.

1932년 미국의 한 일간지에 실린 펜 형태의 최루탄 광고. 광고는 최루 가스로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애틀랜틱 캡처

최루탄의 유해성을 지적하며 사용을 제한하는 노력도 지속해 왔지만 여전히 사용금지를 강제할 방안은 없다. 1993년 화학무기금지조약을 통해 최루탄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지만 법 집행관들에 의한 폭동 진압 사용은 허용됐다. 2013년 유엔에서 채택된 무기거래조약에는 무기거래를 가치 중립적인 상행위로 보지 않기로 했다. 무기 수출에 앞서 인도주의적, 인권적 영향을 고려한 후에 수출 허가 여부를 결정할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루탄의 사용과 국제거래를 제한할 실효성 있는 국제법 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최루탄이 다른 진압 무기에 비해 경제적이며 여러 ‘목표물’을 신속하게 무력화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치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여전히 많은 국가의 정부에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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