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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가을의 속삭임... 갈대밭 갈까 억새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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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26 16:00:00 수정 : 2019-10-26 11: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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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 신성리 갈대밭/비단길 같은 광할한 금강따라 광활하게 펼쳐져/바람따라 노을따라 은빛·금빛으로 살랑살랑/서로 부대끼는 모습 아름답구나

 

사각사각. 갈잎들은 서로 부대끼며 가을바람을 실어 온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푸르른 하늘과 2m를 훌쩍 넘는 갈대들. 가만히 눈을 감고 깊은 호흡으로 풀 내음을 맡아본다. 이마를 내리쬐는 햇살과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던 어머니의 손길 같은 바람. 오로지 나만 있는 듯한 공간에서 오붓이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이다. 신성리 갈대밭. 가을을 온몸으로 만끽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을 여태 보지 못했다.

 

#무성한 갈대밭에서 대자연 마주하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613번 지방도로를 따라 끝까지 들어가니 서천군과 군산시가 마주 보는 금강하구에 도착한다. 제방도로에 올라서자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비단결 같은 금강을 따라 갈대밭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어서다. 폭 200m, 길이 1.5km로 33만㎡를 넘는다고 한다.

 

입구에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열연한 주인공 이영애, 이병헌, 송강호의 조형물이 서 있다. 갈대밭에서 볼일을 보던 남한 병사 이병헌은 지뢰를 밟고, 우연히 마주친 북한 병사 송강호와 신하균이 이병헌을 구해주며 우정을 쌓아 가는데 그들이 만나는 갈대밭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신성리 갈대밭

갈대밭의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만든 데크를 따라가니 쉽게 갈대밭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간다. 입구보다는 데크가 끝나는 곳 전망대까지 가야 광활한 갈대밭 풍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마치 황금빛으로 물든 벼 같은 무성한 갈대밭이 금강과 가을 하늘의 푸르름과 만나니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듯하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봐도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

 

데크에서 내려서면 미로 같은 오솔길들이 이어지는데 사실 신성리 갈대밭의 매력은 위에 보는 것보다 갈대밭 속으로 들어가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양옆으로 2∼3m의 갈대들이 담장처럼 둘러서 아주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내는 갈잎들의 속삭임뿐. 신선한 공기를 폐 깊숙한 곳까지 불어넣으니 마음이 더없이 평화롭다. 영화테마길, 솟대소망길, 갈대기행길, 철새소리길, 갈대소리길 등 다양한 갈대숲길이 있는데 갈대문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김소월, 박두진, 박목월 등 서정시인들의 시를 써놓은 통나무 판자들이 나타난다. 갈대와 서정시라니. 가을날, 환상의 조합이다.

 

신성리 갈대밭 저녁 노을

오후 4∼5시쯤 이곳을 찾는 것이 좋다. 결코 놓칠 수 없는 풍경이 신성리 갈대밭의 저녁노을이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 여유있게 오솔길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갈대 위로 쏟아지는 낙조가 가을의 낭만을 더한다.

 

신성리 갈대밭은 훼손을 막기 위해 전체 면적의 2~3%만 갈대공원으로 개방됐다. 갈대의 생물학적 수명은 무려 1000년이란다. 줄기는 말라 죽어도 뿌리는 살아남는 다년생 식물이기 때문인데, 이 아름다운 풍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가 잘 보존해야겠다.

 

제주 따라비오름 억새
제주 따라비오름 둘레길 억새

#갈대 보러 갈까 억새 보러 갈까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이 노래를 안다면 당신의 나이는 지긋할 것이다. 으악새는 억새의 경기도 방언. 겉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은 갈대와 억새의 차이점은 뭘까. 둘 다 볏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지만 갈대는 물을, 억새는 마른 땅을 좋아하고 갈대가 키다 더 크다. 강이나 하천 주변 습지나 연못, 저수지, 개울가에는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억새는 산이나 들을 은빛으로 물들인다.

 

제주 따라비 오름 정상 오르는 길 억새

강원도 정선 민둥산 등 전국에 억새 명소가 많지만 으뜸은 제주다. 다양한 억새 군락지가 곳곳에 있어 억새를 테마로 여행하기 좋기 때문이다. 사실 산의 억새를 즐기려면 1시간 이상 힘겨운 등산이 필요한데 제주의 억새는 대부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름이라는 점이 매력이다.

 

일정이 빠듯해 딱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제주 오름의 여왕’인 따라비오름을 추천한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은빛 물결로 넘실대는 억새가 오름 전체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굳이 정상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가을 억새를 만끽하기 충분하다. 완만한 둘레길이 잘 조성돼 있어 패션을 포기할 수 없는 여성이라면 하이힐을 신고도 둘러볼 수 있다.

 

마침 능선이 아름다운 둘레길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비부부가 웨딩 화보를 촬영 중이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제주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억새가 완벽한 소품을 만들어주니 영원히 기억될 웨딩 사진이 나올 것 같다. 운치 있는 장면을 많이 얻을 수 있어 이곳은 요즘 웨딩 촬영의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따라비오름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차 한대만 지날 정도로 매우 좁고 굽은 길이 많아 충돌사고가 날 수 있으니 과속은 절대 금물.

 

제주 가시리 풍력발전소 억새

따라비오름으로 향하는 녹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풍경을 만나니 잠시 멈춰 서자. 가시리 풍력발전소인데 도로가에 무성하게 자란 억새의 움직임처럼 아름다운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여유있게 돌아가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제주 새별오름 입구

따라비오름이 제주 동부를 대표하는 억새 명소라면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은 제주 서부의 으뜸 오름이다. 서부 중산간 오름지대에는 바리메오름, 누운오름, 당오름, 금오름 등 많은 오름이 밀집해 있는데 저녁 하늘에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 있다 해서 새별오름으로 불린다. 근처에 성이시돌목장, 왕따나무가 있어 요즘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생김새부터 독특하다. 눈앞에 반달 같은 봉우리가 솟아있고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있다. 왼쪽 길을 따라 많은 이가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해발고도 519.3m으로 멀리서 보면 아주 완만해 보였는데 막상 입구에서 보니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파르다. 30분을 올라야 하는데 10분 정도만 올라도 허벅지 근육이 땅기기 시작한다. 따라비오름보다는 난도가 많이 높다.

 

새별오름 정상 오르는 길
새별오름 정상부근 억새
새별오름 정상 표지석

정상까지 가 보자고 조르는 여친에게 남친은 “정상 가봐야 뭐 있겠어”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뭐 있다.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새별오름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갈대는 오름이 시작되는 곳에 무성하게 있고 중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상 부근에 도달하면 다시 오솔길을 따라 물결처럼 출렁이는데 너무나 아름답다. 이곳에서 억새 사이로 살짝 들어가 촬영하면 인생샷을 건지게 된다. 오름을 오르며 흘린 땀은 정상에 서자마자 시원한 가을바람이 순식간 가져가 버리고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은 시원하게 뻥 뚫린다.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많은 이가 줄을 서서 새별오름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합천 황매산 억새

#‘영남의 소금강’ 소백산맥의 광활한 억새

 

경상남도 합천의 황매산 억새도 지금이 제철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광활한 억새들이 펼쳐져 있는데 면적은 50만㎡에 달한다. 처음부터 억새 군락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합천군은 1980년대에 황매산 정상에 목장용지를 만들었는데 한때 번창했지만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목장들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얻은 것이 하나 있다. 목장을 만들면서 나무를 잘라내자 키가 작아 햇볕을 제대로 못 보던 억새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엄청난 군락지로 바뀌었다.

 

황매산 억새는 자생력이 매우 뛰어나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면 무성하게 자란다. 황매산 억새는 10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절정을 이루니 요즘이 억새를 제대로 즐길 시기다. 풍광이 뛰어나 출사 장소로도 인기가 높은데 동틀 녘과 일몰 전후에 촬영하면 황매산을 뒤덮은 풍성한 억새의 은빛 물결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서천·제주·합천=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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