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0년대 대사, 외무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 등을 지내며 한국 산업화 시대 주요 공직을 도 맡아 현대사 한 축을 그려낸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노 전 총리가 어제 서울대병원에서 돌아가셨다"며 "숙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안다. 빈소는 아침 9시쯤 차려질 예정"이라고 했다.
노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조문은 정오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25일로, 장지는 대전현충원이다.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노 전 총리는 평양 제2공립중학(평양고보 후신)에 재학 당시던 19세 때 단신으로 월남한 실향민인이다. 노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 졸업 1년 전인 1953년 고등고시(외교)에 합격했다. 55년터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5공 정권(전두환 정부)이 들어선 후 외무부 장관을 맡았다. 고시 출신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외무장관에 올라 관심을 받았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정원장), 국무총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985년부터 2년3개월간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며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함께 노·노 체제를 이끄는데 일조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국무총리(2년4개월) 이전까지 최장수 총리 기록으로도 주목 받았다.
주요 업적으로 장관 시절이던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최대 규모의 양국 간 경협협상을 맡기도 했다. 안기부장 재직 당시 중국과의 정상관계 수립을 위한 첫 공식 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노 전 총리는 1987년5월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축소 조작 사건이 불거진 후 악화된 여론을 고려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당시 나이 58세로 용퇴했다.
은퇴 이후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고문을 지냈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공직은 맡지 않았다.
노 전 총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표적 멘토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대 주인도대사로 나갈 때 반 총장을 서기관으로 데려간 데 이어 방글라데시와 수교할 때도 반 총장이 동행했다.
한편, 노 전 총리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10년 전인 2009년 4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故) 김 여사와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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