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세기 칭기즈칸 군대는 강인한 몽골 말과 독특한 전투식량 ‘보르츠’로 세계를 제패했다. 몽골군은 겨울 햇볕에 바짝 말린 육포를 절구에 빻은 보르츠를 깨끗이 씻은 소의 위나 오줌보 안에 넣어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먹었다. 육포 가루는 엄지손가락 한두 마디 분량만 물에 풀어 먹으면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전장에서 불을 피워 조리할 필요가 없어 적에게 노출되지도 않았다. 몽골군의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다.
근대적인 개념의 전투식량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인 1809년 등장했다. 음식물을 병에 넣고 봉인한 ‘병조림’이다. 프랑스인 니콜라 아페르가 나폴레옹 정부의 음식 보존 공모전에 응모한 이 발명품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깨지기 쉬운 단점은 1801년 영국인 피터 듀랜트가 원통형 주석 캔으로 통조림을 만들어 해결했다. 통조림은 1차 세계대전 때 전성기를 구가했다.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 남북전쟁 때 나왔고, 설탕 입힌 초콜릿은 스페인 내전 중 등장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이 방위사업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S형 전투식량 납품이 시작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6건의 사용자 불만이 접수됐다. 6월에는 카레비빔밥에서 고무줄과 플라스틱이 잇따라 나왔다. 같은 달 해물비빔밥에서는 고무밴드가 나왔고, 7월에는 닭고기비빔밥에서 귀뚜라미가 나왔다. 음식 색깔이 변했거나 밥알이 그대로 씹히는 등 조리상 문제점이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S형 전투식량을 제외한 기존 전투식량의 2016년 8월∼2019년 8월 불량사례 접수 건수도 30건에 달했다.
S형 전투식량은 민간업체에서 개발한 아웃도어형 식품으로, 장병들이 기호에 맞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육군 전투식량(660만개 비축)의 약 25%(170만개)를 차지한다. 군 당국이 신개념 전투식량으로 그 종류가 36가지에 달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귀뚜라미 등이 나왔다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사들에게 불량 음식을 제공하면서 사기 높은 강군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전투력을 증강하려면 첨단무기 도입에 앞서 식사의 질부터 개선해야 한다.
박창억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