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부모님 효도까지 ‘플미충’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나 싶더라니까.”
최근 콘서트를 함께 보러가기로 한 A씨는 예매 도중 몇 달 전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열을 올렸다. A씨는 한 유명한 중견가수의 팬인 부모님을 위해 이 가수의 디너쇼 예매를 하고자 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예매 당일 10분도 채 안 돼 표가 매진됐다는 뉴스까지 오르내렸다.

A씨가 황당했던 것은 예매 직후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 올라온 이 가수의 티켓이다. 리셀가는 정가보다 많게는 몇 십만원이나 값이 비쌌다. A씨는 여기까지 플미충이 손을 뻗었구나 싶더라 했다. 플미충은 웃돈을 뜻하는 ‘프리미엄’과 벌레를 뜻하는 한자어 ‘충’을 합친 말로, 콘서트 티켓 등을 웃돈을 얹어 되파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런 표들이 거래되는 온라인 사이트까지 생겼다. A씨는 “BTS나 워너원 같은 아이돌 콘서트 표가 몇 백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플미충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손을 대는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아이돌 그룹 및 인기 가수의 콘서트부터 클래식, 뮤지컬 공연, 심지어는 스포츠 경기까지 인기 있는 공연이라면 표 한 장을 얻기 위해서 힘겨운 전쟁을 치르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N분 매진 행렬’에 “우리 문화산업이 이 정도로 성장했구나”,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구나”라고 그저 뿌듯하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꾼’들이 섞여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크로(지정된 명령을 반복적으로 자동으로 수행하는 프로그램)를 통해 단시간에 무차별적으로 표를 싹쓸이한다.
덕분에 공연을 보고자 하는 이들은 대학교 수강신청을 방불케 하는 예매전쟁에 뛰어든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PC방을 찾아 타이머를 맞춰두고 예매 오픈 정각에 맞춰 떨리는 손으로 ‘포도알’(공연 지정석 모양을 지칭하는 속어)을 향해 마우스를 클릭하지만 돌아오는 건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안내창)와 허탈감, 플미충을 향한 분노다. 매크로를 이기기가 쉽지 않다.
한 록밴드 그룹의 광팬인 B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콘서트 공연표를 예매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이들 인기가 급부상하면서 원래 가격의 2∼3배를 훌쩍 넘는 ‘플미티켓’(웃돈이 붙은 암표)이 아니고서는 공연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오죽하면 B씨는 “내 가수가 인기가 떨어져서 플미충이 더 이상 관심 안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는 말까지 했다.
플미티켓은 이처럼 팬심과 건전한 문화산업 생태계를 파괴하지만, 국내에는 아직까지 온라인상에서 매크로를 통해 표를 구매한 후 되팔아도 이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예매처와 공연기획사에서 1인당 매수 제한, 예매자 신분증 확인 등 미약한 제재에 나서는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대응에 코웃음치듯 예매 직후 플미티켓 판매 글이 줄을 잇는다.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픈 팬들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플미티켓은 팔지도 구매하지도 않겠다’는 공연문화 정착과 동시에 온라인상 암표 거래를 관리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남혜정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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