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년의 한(恨)을 풀어준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북 전주시에 사는 이길순(66·여)씨는 27일 한국전쟁 때 전사한 아버지의 병적기록과 화랑무공훈장 등을 찾아준 한 소령출신 예비역에 감사를 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점수씨는 6·25전쟁에 참전해 숨졌고, 고인의 시신은 전주군경묘지에 안장됐다. 뒤늦게 딸이 아버지의 전사에 관한 기록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호적정리에 나선 2005년부터다.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병무 행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씨가 스스로 관련 기록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적등본에 고인은 1953년 6월27일 전사한 것으로만 기록돼 있을 뿐 관련 세부 병적기록 등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고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전사자들이 많은 데다 군번과 제적등본·병적증명서상 이름, 출생일이 모두 달라 더욱더 힘들게 했다. 그는 육군본부에 병적 확인을 신청했지만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아버지에 대한 전쟁 유공 등 관련 기록이 없다 보니 이씨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6·25 참전 국가유공자 유족에게 지급하는 연금에서도 제외됐다.
특히 이씨의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아버지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다 남편이 전사하면서 혼인신고가 불가능하게 되자 딸의 호적을 큰아버지에 올려 유족 관계를 입증하는데도 어려움을 겼었다.
이씨 어머니(86)는 “배우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를 하며 먹고 사는 게 시급해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호적정리는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러던 이씨가 아버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사 기록과 전투에서 헌신 분투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은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소속 전인석(55) 전주시 완산구지역대장을 만나고부터다. 전 씨는 1983년 3군사관학교 20기로 임관해 2004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이듬해 예비군지휘관으로 임용돼 36년 동안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전씨는 전주시 덕진구 기동대장으로 일하던 2009년 7월 갑자기 찾아와 “6·25때 전사한 아버지의 병적기록을 찾아달라”는 이씨의 간절한 부탁을 받았다.
이에 그는 기초수급대상자 어머니와 식당일을 거들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딸의 딱한 사정을 알고 기꺼이 대리인을 자청하고 나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 차근차근 기록을 찾아 나섰다.
전북병무청과 전북동부보훈지청, 육군본부, 국방부유해발굴단감식단 등에 질의하고 관련 자료를 요청해 2013년 전주시청에서 고인의 군경묘지 묘적대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실마리로 올해 5월에는 고인의 전사자 화장 보고서 등 자료도 찾아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인은 1952년 8월7일 입대해 1사단 11연대 3·9중대 소속 하사로 1953년 6월27일 경기도 연천지구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82㎜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고인의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오랜 세월이 지났을 뿐만 아니라 동명이인이 많고 군번을 비롯해 제적등본과 병적서상 이름, 출생일이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전씨는 이런 자료를 가지고 이씨가 지난 5월 전북병무청에서 병적증명서를 발급받도록 도왔다. 또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에 자료를 보내 고인이 1954년 9월30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기록도 찾아냈다.
이씨 모녀는 전씨의 도움을 받아 2014년 유전자 검사와 친생자 관계보존 재확인 판결을 통해 혈육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았고, 고인과 부녀 관계 호적을 정리하고 있다.
이씨는 “한 평생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이 이제야 풀린 것 같다”며 “전인석 지역대장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씨는 “아버지를 잃고 가난과 싸워온 유족들의 사연이 너무나 안타까워 돕게 됐다”며 “유족으로서 충분한 대우와 혜택을 받아 그동안의 고통과 원망을 잊고 어머니와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5사단은 다음 달 2일 석종건 사단장 주관으로 전 병력이 참석한 가운데 호국영웅 고 이점수 하사(현재 상병)에 대한 화랑무공훈장을 딸 이씨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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