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도리우미 유타카/지식산업사/1만8000원
일본학자가 식민지 조선 경제의 실상을 탐구한 책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를 탄탄한 경제 관련 통계를 바탕으로 실증적으로 검증했다. 차분한 논리와 일본학자 특유의 탐구적 정신이 돋보인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한국 근대화의 실질적 시발점을 일제 지배에서 찾는 식민지 관점의 시각으로, 일제강점기에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책을 출간한 김경희 지식산업사 대표는 “예컨대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 연구자 5명과 함께 썼다는 책 ‘반일 종족주의’는 한쪽만 평가했거나 경제적 통계를 잘못 분석했다”고 지적했다.
우선 저자는 “일본강점기 통계 문서들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인이 1945년에 작성한 표를 들어 강제징용 때 조선인 탄광부의 임금이 높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저자는 통계 자료가 제시하지 못하는 당시 정황이나 데이터의 행간을 분석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러면서 당시 체험담, 수기나 신문 보도 등을 근거로 일본인 청부업자 편에서 이루어진 조사의 한계가 있다고 풀이한다. 단적인 사례가 임금 미지급 수법과 그로 말미암은 저임금의 유지 정책이다. 이는 조선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착취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1930년에 작성한 통계 중에서 우편저금 잔액은 보이지 않는 착취의 증거이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2.45%를 차지하는 일본인이 저금액의 86%를 보유했다. 1인당 저금액은 일본인이 56.46엔, 조선인이 0.23엔이었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 논문 중에는 거주 인구가 극소수인 일본인이 모든 것을 장악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선인에게도 경제적 이익이 배분됐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인 한 사람이 조선인 245명 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책에서 식민지 경제의 민낯을 들춰낸 수치는 이외에도 많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정책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본이 조선의 공업 발전을 경계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일제가 진정한 의미에서 조선을 발전시키려고 했다면 메이지 시대 일본 정부처럼 많은 관영 공장을 건설해 민간에 불하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인프라 정비, 즉 토목공사에 편중하는 수법을 통해 조선 경제발전에 주력했다는 명분을 쌓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수탈’이라는개념으로 반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예컨대 조선총독부가 입찰 자격을 제한해 조선인 참여를 억제한 행위를 수탈로 보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조적 폭력의 지배를 당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어떻게 일그러졌는가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반일 또는 친일이 궁극적인 대안은 아니다”면서 “일본인도 납득할 논리를 제시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저자 도리우미 유타카(사진)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과 선문대학교 강사로 재임 중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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