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년 9월7일 포르투갈의 왕세자 페드루가 독립을 선언하며 ‘브라질 제국의 황제’인 ‘페드루 1세’로 즉위한 것은 이상한 느낌이 앞선다.
‘제국’으로 ‘독립’한다는 말이나 ‘페드루 1세’라는 이름이 모두 어색한 것이다.
당시 남미 대륙 도처에서 벌어진 독립투쟁은 브라질을 제외한 대륙 전체를 제국처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치하에서 벗어나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브라질이 그처럼 다른 남미 지역과 다른 것은 식민 종주국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 두 나라는 외견상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 잡은 이웃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달랐으며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스페인이 나폴레옹에 복종하기도 하다 반기를 들기도 한 반면 포르투갈은 나폴레옹이 쳐들어오자 왕가가 식민지인 브라질로 피신했다.
포르투갈은 1만5000명이나 되는 왕가 식구를 태워 나를 능력도 없어 동맹국인 영국이 군함들을 이용해 실어다 주었다.
왕이 자리 잡자 브라질은 식민지 신세를 벗어났다. 페드루 1세의 부왕인 주앙 6세는 국명을 ‘포르투갈-브라질-알가브르 연합왕국’으로 개명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서 포르투갈로 돌아간 부왕이 브라질을 식민지 지위로 되돌리려 하자 귀국을 하지 않고 남아있던 페드루가 기회를 잡아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독립을 했다고 브라질에 얼룩진 포르투갈 지배의 문제점이 사라질 수는 없어 세계 5위의 대국인 브라질은 아직도 어수선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포르투갈이 자기네 본토보다 100배 가까이 큰 땅을 식민지로 경영했던 데서 파생한 문제점으로 볼 수도 있다.
독립으로 한때 인기를 끌었던 페드루 1세는 10년도 못 된 1831년 불과 5세인 아들(페드루 2세)에게 ‘제위’를 물려준 채 포르투갈로 ‘귀국’해야 했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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