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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은별이 사건’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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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26 23:59:55 수정 : 2019-08-26 23: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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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연인이었어요….”

부끄럽지만 최근 보도한 ‘은별이 사건 그후’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첫 번째,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어른들이 엄청 많다는 것. 지난해 각각 10대 여자 조카, 여중생과 성관계를 한 30대 삼촌과 학원장은 법정에서 “서로 사랑한 사이”란 주장을 폈다. 친족이란 것도 문제이지만 원장은 유부남에 자녀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변명을….’ 혀를 쯧쯧 찼다. 그러나 법원 시각은 정반대였다.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즉, 우리 사회에서 아동과 어른 간의 ‘육체적 사랑’은 얼마든지 허용(!)되는 것이었다.

이창수 특별기획취재팀 기자

두 번째, ‘우리보다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나라는 없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한국’은 내가 알던 곳과 전혀 딴판이었다. 성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치는 ‘선비들의 나라’가 바로 우리 사회 아니던가. 하지만 아동의 성만큼은 달랐다. 아이들이 ‘성적 동의 연령(age of consent)’인 만 13세만 넘기면 ‘임신 등 성관계가 야기하는 각종 미래 위험을 충분히 고려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2013년 여중생에게 선물을 주며 환심을 산 뒤 여러 차례 성관계를 한 40대 문구점 주인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이가 동의한 건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세 번째, 온라인에서 ‘성(性)진국’으로 통하는 일본의 다른 면을 봤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13세’ 기준이 1907년 일본이 만든 걸 그대로 베꼈다고 본다. 그래서 그간 여러 토론회에서 ‘봐라, 선진국 일본도 13세 아니냐. 동의 연령 상향은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일본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보수적인 국가였다. 지방정부는 ‘음행조례’를 둬 18세 미만 아동과 성교나 유사성교를 하는 어른들한테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내렸다. 심지어 청소년끼리의 관계도 ‘진지한 교제’여야만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밖에도 ‘반전’ 국가들이 꽤 있었다. 개방적 분위기로 알려진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호주 등도 16∼18세를 기준으로 아동과의 성관계를 형사처벌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참 ‘낙관적’이란 점도 새삼 깨달았다. 매년 5000명 안팎의 아이가 성범죄 피해를 입고 그중 일부는 은별이 사건처럼 ‘사랑’으로 결론 내려진다. “아동은 100% 폭행·협박 없이도 성폭행이 가능해요.” “교사·성직자가 마음먹고 성범죄에 나서면 어떻게 막나요, 못 막아요.” 전문가들 말은 섬뜩했다. 그동안 뉴스가 쏟아졌으니 사회 구성원 모두 이런 일이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간 관련 연구도, 사회적 논의도 거의 없었다는 점은 ‘한국인들은 지독히 낙관적’이란 것 말고 달리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아이는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국가가 ‘사랑’이래요….” 은별이 사건은 비극이었다. 이 비극의 서사는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은별이가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창수 특별기획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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