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나가키 히데히로 / 서수지 / 사람과나무사이 / 1만6500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바스쿠 다 가마,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페르디난드 마젤란…. 이들이 거친 바다를 무릅쓰고 탐험에 나선 것은 모두 ‘후추’ 때문이었다. 후추는 신대륙 발견의 촉매제이자 세계 재편의 계기가 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활짝 열고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것도, 그 후 미국이 영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승승장구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후추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식물은 세계사를 바꿔 왔다. 수렵과 채집에만 의존하던 인류가 우연히 발견한 돌연변이 밀 씨앗, 그 작은 한 톨이 인류를 번성케 했고, 문명을 태동시킨 것처럼 말이다. 일본 시즈오카대학 교수인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평범한 식물들이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고 바꿀 수 있었던 까닭은 후추처럼 특정 시대마다 특정식물에 인간의 들끓는 욕망이 모이고 강하게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저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에서 감자,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이 오늘의 세계지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책은 이 식물들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추동하며 만들어낸 인류 역사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감자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19세기 아일랜드에는 감자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이 휩쓸고 지나갔다. 100만여명이 아사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수가 자그마치 400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대규모 노동자 집단으로 변신해 미국 공업화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 중에는 달 탐사 계획을 추진한 주인공이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패트릭 케네디도 있었다. 월트 디즈니와 맥도널드 형제 역시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이다. 저자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감자 역병으로 인한 아일랜드 대기근이 없었다면 케네디와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와 같은 걸출한 미국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의 세계지도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의 차는 세계사를 바꾼 두 가지 전쟁, ‘미국 독립전쟁’과 ‘아편전쟁’을 촉발했다. 1773년 영국은 미국에 수출하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매겼고, 영국의 강압적인 제재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차를 운송하던 영국 배를 기습해 차 상자를 빼앗은 뒤 모조리 보스턴항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듬해 영국은 미국인의 거센 저항에 보스턴항 폐쇄라는 강경책으로 맞섰고, 이는 결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차를 얻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벌여 대승을 거두고 홍콩을 장악하면서 난징조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밖에 대규모 노동력이 투입돼야 하는 사탕수수 농업으로 노예무역이 시도되고 끔찍한 인종차별과 학대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고대 이집트의 노동자들은 허리춤에 양파를 매달아 먹으며 피라미드를 지었다.
저자는 “인류 역사는 인간이 식물 재배를 시도한 그 시점부터 시작되었다”며 “오늘날 인류는 전 세계적으로 온갖 다양한 식물을 재배한다. 만약 식물의 최대 존재 목적이 ‘씨앗 확산’에 있다면 지구 구석구석까지 영역을 확장한 식물이야말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생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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