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오는 9일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그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국 해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 우리한테 부담을 지우는 ‘청구서’만 잔뜩 들고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마침 ‘아시아 국가의 방위는 아시아 국민의 힘으로’라는 닉슨 독트린 50주년을 즈음한 방한이어서 한·미 동맹의 미래와 맞물려 에스퍼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이 더욱 주목을 받는 모양새다.
◆2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
1일 정부에 따르면 에스퍼 장관의 국내 카운터파트는 일단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다. 그래서 9일 두 장관의 양자회담이 열린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러시아 공군의 우리 영공 침범 등 막중한 안보 현안이 있는 만큼 에스퍼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 예방을 위해 청와대를 찾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지난 6월 초 패트릭 섀너핸 당시 국방장관 대행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문 대통령을 예방하고 정 장관과 양자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그 직후 섀너핸 대행이 사생활 문제로 낙마하고 약 2개월의 공백을 거쳐 에스퍼 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섀너핸 대행 방한 때에는 현행 한·미 연합사령부 체계의 개편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졌다. 연합사를 서울에서 주한미군사령부가 있는 경기 평택 기지(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고,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인수 이후 전작권을 행사할 미래연합사령관을 한국군 대장 중에서 따로 임명하는 등의 합의가 이뤄졌다.

반면 이번 에스퍼 장관 방한 기간에는 한·미 동맹의 근간인 주한미군의 방위비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올해 한국이 분담한 주한미군 방위비가 1조389억원인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이 금액에 불만을 표시하며 “한국이 더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한국 유조선을 이란 등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해군 함정을 파견하는 방안도 한·미 국방장관의 협상 테이블에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닉슨독트린 50주년 직후라 메시지 내용 '주목'
마침 지난달 25일은 ‘아시아 국가의 방위는 아시아 국민의 힘으로’라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는 닉슨 독트린 발표 후 꼭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 국방장관이 닉슨 독트린 50주년을 찍고 한국을 방문한다는 점 자체가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꼭 50년 전인 1969년 7월25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령 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아시아·유럽 7개국 순방 도중 잡힌 일정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작심한 듯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미국은 세 번이나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에서 싸워야 했다”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직접적 출혈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세 번의 전쟁은 일본과의 태평양전쟁(1941∼1945), 북한 및 중국과의 6·25 전쟁(1950∼1953), 그리고 베트남 전쟁(1964∼1973)이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등장한 닉슨 독트린은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핵 공격 이외의 공격에 대해서는 당사국이 그 1차적 방위 책임을 져야 하고 미국은 군사 및 경제 원조만 제공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독트린 발표 직후인 1971년 주한미군 중 1개 육군 사단이 한국 정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철수함으로써 ‘아시아 국가의 방위는 아시아 국민의 힘으로’라는 미국 측 요구사항이 빈말이 아님을 입증했다.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은 최근 펴낸 저서 ‘자주국방의 길’에서 “닉슨 독트린은 박정희정부가 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방 노선 추진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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