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인 황병승(49)씨가 3년여 전 ‘문학계 미투’ 폭로 사건 당시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자 사실과 다르다며 힘들어 하고 성희롱 의혹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동료 시인의 주장이 나왔다. 박진성 시인은 24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황병승 시인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성희롱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2016년 이후 성범죄자 낙인이 찍혀 강연과 출판계약이 모두 끊겨 삶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전했다.
문학계 성폭력 미투가 잇따르던 2016년 11월 서울예대에는 ‘문단 내 성폭력 서울예대 안전합니까’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피해자 A씨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는 “(황 시인이)‘시인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A씨를) 술자리에 데려갔고 데이트도 몇 번 했지만 1∼2주 후 여자친구가 생겼다면서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며 “(황 시인이) ‘여자는 30(살) 넘으면 끝이다’라는 언어폭력과 술에 취해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 박진성 “황병승 그런 말(성희롱) 한 적 없다해…소송도 준비하다 포기”
박 시인은 “당시 황 시인에게 그런 말(성희롱)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라고 했다”며 “1~2년 일도 아니고 12년 전 가르치던 제자가 친구한테 말을 해서 제자 본인도 아닌 남성 2명이 대자보를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황 시인이 방에 누워 있는데 기자가 전화를 해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하니까 얼떨결에 ‘자숙하고 살겠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라면서 “그 이후 대학 강연은 끊기고 각종 시집 계약들이 파기됐다”고 전했다.
박 시인은 “황 시인이 한달 강연으로 150만원 안 되는 돈을 받고 생활하던 시인이었는데 (미투 폭로 이후)그게 다 끊겼다”며 “황 시인이 2012년에 서울 수유리 투룸에서 살다가 2015~16년쯤에 망원동으로 왔는데 미투 사건 이후 파주까지 내몰렸었다”고 했다.

황 시인은 대자보를 쓴 학생들과 소송을 준비하다 도중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인이 24일 공개한 지난 3월 통화녹음에 따르면 황 시인은 “형도 움직일 거야”라며 소송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당시 통화에서 “사는 게 거지다. 진성아 이게 삶이 아니야. 답답하니까 전화했다. 10년 동안 알고 지냈던 애들도 연락안하더라”라고 절규했다. 박 시인은 “나는 싸움닭 같지만 황 시인은 그렇지 못했다”며 “황 시인은 대자보를 붙인 2명을 고소해봤자 가벼운 벌금정도 나올 거고 그걸 보도한 언론을 대상으로 정정 보도를 청구해도 대자보를 가지고 보도했으니 경제적으로 안 될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고 전했다.
박 시인 역시 자신이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음에도 후배 등 아는 여성들을 스토킹하거나 성폭력했다는 미투 가해자로 지목돼 큰 고통을 겪다 법적 싸움까지 간 끝에 혐의를 벗고 명예를 회복한 바 있다.
박 시인은 2003년 황 시인을 알게 돼 지난해 7월까지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박 시인은 24일 페이스북 글에 “(황병승 시인은)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자 무고의 희생자”라며 “문단이라는 거대 이해 집단이 황병승 시인을 죽인 ‘공범들’이다”라고 적었다.
◆ 경기도 고양시 연립주택에서 혼자 살던 황 시인…알코올 중독 증세도
경찰에 따르면 황 시인은 최근까지 경기도 고양시 원당 연립주택에서 혼자 살았고 부모가 사망 현장을 발견했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정도를 보아 사망한지 최소 20일 가량이 지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황 시인은 최근 알코올 중독 증세 등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황 시인은 2003년 ‘파라21’을 통해 등단했으며 ‘트랙과 들판의 별’, ‘여장남자 시코쿠’, ‘육체쇼와 전집’ 등 시집을 남겼고 2013년 미당문학상, 2010년 박인환문학상 등을 받았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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