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생 이모(25)씨는 최근 북튜버를 통해 책을 ‘즐기기’ 시작했다. 북튜버(Booktuber)란 책을 뜻하는 영어 북(Book)과 유튜버(Youtuber)를 합성한 단어로, 책을 소재로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말한다. 해당 북튜버를 통해 이씨 외에도 3만명이 넘는 구독자가 평소 접하기 어려운 고전부터 인문학 서적까지 다양한 책 이야기를 전달받고 있다. 이씨는 “북튜버가 제공하는 책의 줄거리나 소개 등을 통해 어려운 내용도 쉽게 이해하게 됐다”며 “책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 직장인 김모(26)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독립서점을 방문해 평소 쌓인 업무 스트레스를 푼다. 책들이 쌓여 있는 공간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각종 강연을 즐기며 휴식하는 이날이 그에겐 가장 소중하다. 김씨는 자신만의 휴식법에 대해 “꼭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책과 함께하는 공간과 문화를 즐긴다”며 “독립서점으로 나들이를 와서 나만의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을 즐기는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다.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눈으로 읽는 ‘고전적인’ 책 읽기가 아니다. 이들은 오디오북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원하는 장소에서 책을 듣거나 보고’ 있다. 일과 학업에 지쳐 책과 가까워지지 못했던 청년들이 과거와는 달라진 방식으로 지식과 위안을 얻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오디오북
새로운 독서 트렌드 중에서도 오디오북은 최근 가장 돋보이는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할 일이 많아 바쁜 청년들에게는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책을 즐길 수 있는 오디오북만의 장점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19일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팟빵’이 자사 이용자 1만27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45.6%가 출퇴근(등하교) 또는 이동 중 오디오북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오디오북만 들었다고 답한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1년 전 처음 오디오북을 접했다는 대학생 송모(23·여)씨는 “책은 계속 읽어야만 하지만, 오디오북은 켜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생각보다 듣는 책이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서 계속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딱딱한 기계음이 아닌 전문 성우나 연예인·작가가 직접 책을 읽어준다는 점도 오디오북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독서 애플리케이션인 ‘밀리의 서재’는 30분 내외로 요약한 책을 유명인이 읽어주는 ‘리딩북’ 서비스를 제공해 20~30대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실제 ‘밀리의 서재’ 이용자 연령 분포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이용자의 77%가 20~30대였다.
오디오북의 가파른 성장세에 출판업계도 움직이고 있다. 조정래 작가가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해냄출판사)’은 지난 5월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먼저 공개하면서 화제가 됐다. ‘미움받을 용기’와 ‘명견만리’ 등의 책을 출판한 ‘인플루엔셜’도 2017년 오디오북을 제공하는 모바일 스마트러닝 서비스 ‘윌라’를 통해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해하기 쉽게 쏙쏙 설명해 주는 북튜버
유튜브도 젊은층이 책을 즐기는 통로로 각광받고 있다. 어려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거나 핵심내용만 간추려 읽어주는 북튜버들의 영상을 찾아보는 식이다. 북튜브 채널 2곳을 구독 중이라는 직장인 이모(27)씨는 “독서의 필요성은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일을 하다 보면 책을 읽기 버거운 경우가 많다”며 “필요한 내용만 뽑아주는 북튜버 덕분에 단시간에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자주 애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책읽찌라’를 운영하는 국내 1호 북튜버 이가희(33·여)씨는 “알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에너지와 시간은 부족한 분들이 구독하는 경우가 많다”며 “직접 책을 읽는 것에 비해 에너지를 덜 들여도 된다는 점을 좋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북튜버만의 또 다른 매력은 책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영상을 통해 저자와 만날 기회를 제공하거나 실제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모습·방법 등도 함께 게시한다는 점이다. 구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연관된 활동들을 접할 수 있다.
북튜버를 통해 책과 가까워진 구독자들은 실제 독서 구매 행위에 나서기도 한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2019년 상반기 출판 트렌드 키워드로 ‘유튜버셀러’를 꼽았다. 유튜버셀러는 유튜버들이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를 뜻한다. 지난달 예스24가 발표한 ‘201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 판매 동향’에 따르면 최근 가장 핫한 북튜버인 스타강사 김미경씨가 소개한 책들의 경우 방송일 직후 일주일간의 판매량이 전 주와 비교했을 때 최대 5360%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책과 함께 호흡하는 복합문화공간 독립서점
청년들은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인 독립서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책과 친해지기도 한다. 독립서점이란 대형 출판사가 펴낸 책들보다는 개인이나 소규모 출판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기획·제작한 책 등을 유통하는 서점을 말한다. 이들은 대형서점과는 달리 골목길 등에 자신만의 개성에 맞춰 공간을 꾸며 놓은 경우가 많다. 카페처럼 커피, 디저트를 갖춰 놓는다.
책을 보면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즐기는, ‘책맥’을 할 수 있는 서점도 많다. 최근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독립서점에 열광하는 이유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자사 고객의 카드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독립서점을 이용한 고객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54%로 가장 높았고, 30대(25%)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20대 여성의 독립서점 이용은 4년 전과 비교해 4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책을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독립서점에 가기보다는 분위기나 공간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서점을 즐기다 보면 책을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더 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독립서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동네서점’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인 ‘퍼니플랜’이 지난해 독립서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운영 중인 독립서점은 전국에 416곳으로 2017년(283곳)에 비해 133곳이 늘었다.
◆“책 즐기는 문화 긍정적…실제 독서로 이어져야”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즐기는 것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책과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가 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환경에서 책이 글자뿐만 아니라 음성이나 영상으로 유통되고, 또 수용되는 것”이라며 “(유튜브와 오디오북 등이) 젊은층이 책과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굉장히 피곤한 사회를 살다 보니 책을 읽기 어려워지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젊은층은 그들에게 익숙한 영상이나 멀티미디어 쪽으로 눈이 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다양한 방식으로 책과 가까워진 청년들이 실제 독서행위로까지 나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윤희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출판저널 대표)는 “자신과의 싸움인 독서는 약간의 끈기가 필요하다”며 “(유튜브 등을 통해 책을 접하더라도) 진중한 독서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러한 간극을 줄이는 노력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도 “기술 환경에 맞춰 독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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