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고로 존재 드러난 러시아의 스파이 잠수함은 [박수찬의 軍]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 킬러콘텐츠

입력 : 2019-07-12 14:00:00 수정 : 2019-07-12 10:09:15

인쇄 메일 url 공유 - +

러시아 북부 콜라반도에 있는 세베로모스크 해군기지에 러시아 해군 핵추진잠수함들이 정박해 있다. AP 연합뉴스

잠수함 AS-12. 러시아 정부가 존재조차 부인하던 이 핵추진 잠수함은 ‘로샤릭’(Rosharik)이라는 별명 외에는 공식적으로는 알려진 게 없는 비밀 무기다. 2015년 한 잡지에 AS-12의 모습이 찍힌 적이 있을 뿐, 성능이나 임무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지난 1일 바렌츠해에서 ‘연구 잠수정’이 해저와 주변 지형을 조사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승조원 14명이 숨졌다고 2일 발표하면서 AS-12의 존재가 드러났다. 러시아 정부는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만 공개했을 뿐 잠수함 성능과 사고 경위, 구조 인원 등에 대한 정보는 비밀에 부쳤으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AS-12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통신 케이블 절단, 심해 탐사 가능성

 

미 해군 연구소(USNI) 등에 따르면, 2003년 진수된 AS-12는 2000t급 핵추진 잠수함으로 5MW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원자로 1기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무원은 20~25명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적재한 채 임무를 수행하는 델타-Ⅲ급 전략핵추진잠수함의 밑바닥에 매달린 채 이동하기도 한다. 수심 600~700m까지 들어갈 수 있는 기존 잠수함보다 더 깊이 잠수해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도 갖췄다. 북극해와 인접한 콜라 반도 내 해군기지를 모항(母港)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식적으로는 러시아 해군에 속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에 공개된 가장 또렷한 AS-12의 이미지는 2015년 자동차 전문 매체에 실린 메르세데스벤츠 GL450 자동차의 시험 운행 장면 안에 우연히 포착된 모습이다.

 

우연히 포착된 AS-12 잠수함의 모습. 위키피디아

서방측은 AS-12가 바닷속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주요 시설에 대한 파괴행위 등에 투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유럽 지역에서의 연합작전계획을 수립, 운용중이다. 연합작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대서양 해저를 가로지르는 통신 케이블을 통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이 케이블에 접근해 도청을 할 수 있다면, 나토의 작전계획과 정보공유 현황 등을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유사시에는 케이블을 절단해 나토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미국도 냉전 시절 AS-12와 유사한 장비를 활용해 러시아의 해저 케이블망을 도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저 탐사를 위해 특수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AS-12는 2012년 북극해에서 러시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해저 연구에 투입됐다. 당시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AS-12는 북극해 수심 2500m에서 표본을 채취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줄어들면서 북극 항로를 개척하고 해저에 매장된 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북극과 인접한 국가들 간에는 개발 주도권 장악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8 대 북극 국가인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 미국은 군사기지를 증설하고 과학 탐사를 서두르고 있다. 북극과 가장 긴 해안선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북극 대륙붕을 선점, 배타적경제수역(EEZ) 확장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AS-12는 러시아의 북극 장악을 위해 활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콜라반도 소재 세베로모스크 러시아 해군기지. AS-12 잠수함을 비롯한 주요 함정들의 모항이다. EPA 연합뉴스

◆배터리 폭발 추정…‘사고뭉치’ 오명 못씻어

 

AS-12의 사고를 불러온 화재는 배터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4일 사고 원인과 관련, “배터리 구역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변으로 번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잠수함 설계자와 조선 업계에서 수리 규모를 분석했다”며 “초기 분석 결과 수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2000년 8월 핵추진 잠수함 쿠르스크함이 어뢰 폭발로 침몰해 승조원 118명이 전원 사망한 이후 러시아 해군 잠수함이 겪은 가장 치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잠수함을 운용하는 국가는 최소 한 번 이상의 재앙을 겪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잠수함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구소련 시절부터 잠수함 사고가 자주 발생해 방사능 오염 등의 우려를 낳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K-19 핵추진 잠수함이다. 1961~1992년 활동한 K-19는 숱한 사고로 ‘히로시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구소련은 자신들이 북극해에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핵추진잠수함을 하루 빨리 보여주기를 원했다. 때문에 건조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3명이 사망했고, 냉각수 압력이 기준치의 두 배까지 치솟는 등 문제가 속출했으나 구소련은 사고를 은폐한 채 취역시켰다. 

 

AS-12 잠수함 사고가 알려진 직후인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해군 아카데미 앞에서 해군 관계자들이 사고소식을 듣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TASS 연합뉴스

1961년 7월은 K-19와 구소련 해군에 악몽으로 기록됐다. K-19는 훈련 도중 방사능이 유출돼 원자로가 녹아내릴 위기에 직면, 7명의 승무원들이 목숨을 걸고 원자로로 들어가 사고를 수습했다. 하지만 이들은 방사능에 노출돼 사망했으며, 잠수함도 방사능에 오염돼 한동안 일선에 나서지 못했다. 이 사고는 2002년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K-19:위도우 메이커’로 영화화돼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같은 대형 사고를 간신히 모면했지만 구소련은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K-19를 다시 운용했다. 그러나 K-19는 여전히 화재와 유압장치 파손 및 전기 합선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아 잠수함의 어두운 측면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러시아 잠수함은 외국에 수출된 함정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러시아제 킬로급 재래식 잠수함을 도입한 인도는 잦은 사고로 인적, 물적 피해가 컸다. 2014년 2월 뭄바이항에서 50㎞ 떨어진 해역에서 훈련중이던 잠수함 신두라트나함에서 연기누출 사고가 발생, 2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했다. 2013년 8월에는 뭄바이 해군조선소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제 잠수함 신두라크샤크함이 폭발, 침몰하면서 18명이 숨졌다. 거듭된 사고를 참다 못한 인도 해군은 차기 잠수함 도입사업인 ‘프로젝트 P75i’를 추진하면서 서방측 잠수함 건조회사를 대상으로 입찰제안서를 보냈을 정도였다.

 

러시아의 킬로급 잠수함. 인도에서 잦은 사고를 일으켰다. 위키피디아

이밖에도 인도 해군이 러시아로부터 임차해 사용해온 잠수함 차크라함은 2016년 10월 비샤카타남 항으로 입항하던 과정에서 음파탐지기 돔이 손상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서방측과 달리 잠수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사고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뒤떨어져있다. 해치를 비롯한 주요 출입구의 개폐 여부를 확인하는 센서 관련 기술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탑재된 주요 장비의 품질보증도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AS-12와 같은 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유스피어 다온 '완벽한 비율'
  • 유스피어 다온 '완벽한 비율'
  • 조이현 '인형 미모 뽐내'
  • 키키 지유 '매력적인 손하트'
  • 아이브 레이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