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저 페더러(38·스위스)와 라파엘 나달(33·스페인)이 맞붙은 2008년 윔블던 테니스 결승전은 오랜 테니스 역사에서 최고 명승부로 손꼽힌다. 당시 각각 27세, 22세로 최전성기에 접어든 두 선수가 만나 한 치의 양보 없는 맞대결을 이어갔고, 결국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35분에 시작한 경기가 밤 9시가 넘어 종료됐다.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를 포함해 5세트까지 경기 진행시간만 4시간48분이 걸린 대혈전의 승자는 나달로 이로써 페더러의 윔블던 6연패 도전도 무산됐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명승부로 승자인 나달뿐 아니라 패자인 페더러의 이름까지 함께 팬들의 기억 속에 고이고이 저장됐다.

이 ‘전설의 경기’가 무려 11년 만에 재현된다. 역사적인 대혈전 이후 유독 윔블던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두 선수가 2019년 대회 4강에서 맞붙는 것. 페더러는 11일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8강전에서 니시코리 게이(30·일본·7위)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4강에 안착했다. 첫 세트를 4-6으로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3세트를 완벽하게 잡아내며 지난해 8강 탈락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이 경기는 페더러의 윔블던 통산 100번째 승리여서 의미가 더했다. 단일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본선에서 100승을 달성한 선수는 페더러가 처음이다.
곧이어 나달이 뒤를 따랐다. 잔디코트에 강한 강서브의 보유자 샘 퀘리(32·미국·65위)가 상대였지만 시종 경기를 압도하며 세트스코어 3-0으로 가볍게 4강에 진출해 11년 전 대결의 재현을 바라는 테니스팬들을 설레게 했다.

당시 대결 이후 긴 시간이 지났지만 두 선수가 여전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 중이라 기대감은 더욱 크다. 올 시즌 나달은 지난달 프랑스오픈을 포함해 2개의 타이틀을 따냈고, 백전노장 페더러도 3개의 투어 타이틀을 따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세계랭킹도 나달 2위, 페더러 3위로 최상위를 유지 중이다. 이번 4강전은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경기가 아니라 여전히 남자 테니스 최정상에 올라 있는 현시대 최강자들의 맞대결이다.
승부도 예측불허다. 일단 둘의 맞대결 성적은 24승15패로 나달이 우위다. 메이저대회 맞대결로만 한정 지으면 10승3패로 나달의 우위가 더 확연해진다. 다만 경기장소가 윔블던이라 ‘승리는 나달’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윔블던은 페더러가 통산 8회나 우승하는 등 가장 자신감을 보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1년 전 맞대결에서는 패했지만 윔블던 통산 전적도 2승1패로 페더러가 앞서 결국 이번 ‘클래식매치’의 승자는 뚜껑을 열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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