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흡연자인 회사원 장모(36)씨는 최근 연초 담배를 버렸다. 대신 5월 한국에 상륙한 USB 모양의 액상형 전자담배 ‘쥴’로 갈아탔다. 가장 큰 이유는 연초에서 나는 특유의 쩐내가 쥴에서는 나지 않아서다. 그는 “이게 건강에 덜 해롭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타격감이 좀 약해 가끔 연초 생각이 나지만 그래도 쥴을 거쳐 결국 금연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2 스포츠 담당 기자 김모(39)씨는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출장 때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는 대표팀 일정에 맞춰 따라다니느라 공항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공항 내 흡연실이 없어 담배를 피우러 10분 이상 걸어나가야 했다. 흡연을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전자담배만큼은 공항 내 어디서나 피울 수 있었다. 김씨는 “면세점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를 바로 구입했다”며 “연초에 대해선 엄격하면서 전자담배에 관대한 게 신기했다”고 전했다.
연초 흡연자들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을 것이다. “아직도 연초 피워?”
2017년 5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가 출시된 이후 전자담배는 연초의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연초에 비해 덜한 냄새와 건강에 덜 해롭다는 이미지 덕에 담배시장을 급속하게 잠식했다.
5일 기획재정부의 ‘2019년도 1분기 담배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1분기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9200만갑으로 전년 동기의 6880만갑보다 33.6% 증가했다. 2017년 전체 담배 판매량의 2.2%이던 전자담배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9.6%, 올 1분기 11.8%까지 치솟았다.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쥴’이 국내에 출시되고 이에 뒤질세라 KT&G가 ‘릴 베이퍼’를 내놓았다. 전자담배가 인기를 끌면서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둘러싼 논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전자담배도 담배다” VS “연초보단 덜 해롭다”
흡연자 10명 중 4명은 최근 1년 새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담배 규제 및 체계적 관리에 관한 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진행된 온라인 인식조사 결과 흡연자 3221명의 37.3%(1200명)가 ‘최근 1년간 일반담배에서 전자담배로 바꾼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교체 이유로는 냄새와 건강이 다수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1%(673명)가 ‘냄새가 없을 것 같아서’라고, 30.1%(361명)가 ‘건강에 해가 덜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11.5%(138명)는 ‘향기나 맛 때문에’라고 꼽았다.

아동과 함께 살면 교체비율이 더 높은 점이 특이하다. 기혼자가 미혼자나 별거자보다 전자담배로 바꾼 비율이 높았고, 10세 미만 아동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의 42.3%가 전자담배로 바꿨다. ‘냄새’와 ‘건강’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살배기 아들을 둔 문모(35)씨는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봐 아내가 담배를 끊으라고 압박한다”며 “10년 이상 피운 담배를 단번에 끊지 못해 지난해 궐련형 전자담배로 바꿨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전자담배도 담배다’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지난해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필립모리스코리아의 ‘아이코스’, BAT코리아 ‘글로’, KT&G ‘릴’ 등 국내에서 팔리는 궐련형 전자담배 3종의 배출물에 포함된 11개 유해성분을 분석해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은 일반담배와 유사하지만 3종 중 2종의 타르 함유량이 일반담배보다 오히려 높게 검출됐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유해하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일부 해외에서 전자담배가 유해물질이 덜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국가적으로 전자담배도 담배로 규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게 보건당국의 입장”이라면서 “전자담배에도 니코틴이라는 중독성 물질이 있어 금연에 도움 되는 게 아니다. 전자담배도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담배 업체들은 전자담배를 피울 때 나오는 유해물질이 연초에 비해 훨씬 적다고 주장한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일반 담배의 유해물질량을 100으로 뒀을 때 아이코스에서 나오는 건 평균 10 정도로 90%나 적은 수준”이라면서 “궐련형 전자담배가 인체에 ‘덜 해롭다’고 말하기에 아직 섣부를지 모르지만 유해물질이 적은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담배 업체 주장은 어디까지나 ‘일반 담배에 비해 덜 해롭다’는 것이지 건강에 무해하다는 건 아니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아이코스가 절대 금연을 위한 제품은 아니다”며 “흡연을 계속 이어나갈 흡연자가 일반 담배에 비해 유해물질이 덜한 담배로 선택할 수 있는 대체재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
전자담배가 금연 도구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단국대 의대 가정의학과 정유석 교수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건강보험공단 병의원 금연사업 금연진료건수 및 지속률 1위를 달성한 ‘금연전도사’다. 그런 그가 전자담배를 ‘금연의 징검다리’라며 권장하는 것은 언뜻 보면 아이러니다. 정 교수가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도 가장 좋은 것은 ‘완전 금연’이라고 말한다. 다만 금연이 도저히 힘든 흡연자에겐 분명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운 전자담배가 금연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정 교수가 말하는 전자담배는 니코틴 용액을 증기로 흡입하는 액상형 전자담배에 한해서만 해당한다.
정 교수는 최근 전자담배에 대한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주장을 담아 ‘전자담배,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독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식수준이 초보적이라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흔히 많은 흡연자가 니코틴 때문에 암에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니코틴은 흡연자들의 기분을 강제로 좋게 해주는 중독성 물질이지 발암물질이 아니다. 암이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물질은 대부분 타르에 존재한다”면서 “흡연자들은 니코틴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지 타르로 인해 죽고 싶어 피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니코틴과 타르의 특성을 파악한다면 전자담배가 금연을 좀처럼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타르가 없어 일반 담배보다 몸에 훨씬 덜 해롭다. 일본에서 행해진 액상형 전자담배로부터 분무되는 증기 속의 독성물질을 보면 발암물질 덩어리인 타르는 거의 없고, 60여종에 달하는 연초담배 화학성분이 액상형 전자담배에선 거의 0.1~1% 수준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전자담배를 ‘위해 감축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젠 담배를 끊든지 계속 피우든지 양자택일의 구도가 아닌 ‘도저히 못 끊겠다면 그나마 덜 해로운 제품을 사용하세요’라는 제3의 길의 제시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교수는 ‘쥴’의 인기가 요즘 시들해진 것과 관련해 국내법을 비판한다. 한때 선풍적인 관심을 모은 쥴의 인기가 떨어진 건 ‘타격감’(흡입한 담배 연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적기 때문이라는 게 정 교수 설명이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쥴의 액상형 니코틴 용기(팟)의 니코틴 함량은 1.7%, 3%, 5%로 다양하지만, 국내는 0.7%로 극도로 낮아 흡연자들이 느끼는 타격감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담배 업체들이 액상 니코틴 함량을 1% 미만으로 출시한 이유는 함량이 1%가 넘어가면 환경부 화학물질관리법상 유해화학물질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일반 담배보다 그래도 덜 해로운 액상형 전자담배로 갈아탄 흡연자들이 타격감 때문에 다시 일반 담배로 갈아타게 되면 더 나쁜 게 아닌가. 미국과 같은 니코틴 함량으로 출시해야 흡연자들이 다시 연초로 갈아타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보건당국의 전자담배에 대한 지나친 정보 왜곡과 규제는 ‘가장 해로운’ 담배인 연초담배의 독과점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