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전 선언 66년 만에 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남·북·미 3자회동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가 작지 않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것도,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월28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약 4개월 동안 북·미대화가 얼어붙었던 만큼 이번 판문점 회동은 비핵화 협상 재개에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지 않다. 하지만 북·미 간 또다시 실무협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 정상이 ‘톱다운 방식’의 대화, 그것도 미 대선을 겨냥한 이벤트 형식의 만남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협상 시계 앞당긴 남·북·미 정상 회동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가 대치하면서 양 정상의 ‘친서 외교’가 알려지기 전인 이달 초만 해도 대화 재개의 물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며칠 사이에 갑작스럽게 성사된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의 의미를 낮게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을 제외하고 정전 선언의 사실상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다시 만난 점, 그 자리에 한국 대통령도 함께 배석한 것은 2018년 이후 시작된 한반도 해빙무드에 또다른 기점이 됐다는 평가가 앞선다.

이날 회동으로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 연설에서 북·미대화 재개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이 돼서야 두 정상이 다시 마주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도 깨졌다. 비핵화 협상 시계를 앞당긴 셈이다. 연말 미국이 대선 정국에 접어들고 한국 역시 내년 총선이 가까워오는 점을 고려하면 한·미 간 이해가 맞아떨어진 데다 대북제재 해제가 시급한 북한의 셈법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실무회담을 해봐야 (협상에 진전이 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비핵화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고 정상 사이의 유대나 대화의 모멘텀을 지속시켰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무회담 없는 또다른 이벤트”
그럼에도 이번 북·미 정상 회동에 대해선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일단 북·미 모두 이번 회동을 전격적으로 성사시킨 계기가 실질적으로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있어서기라보다는 국내 정치적 목적이 컸다는 이유에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하노이 회담 실패를 만회하고 내부적으로 미국 지도자가 판문점에 와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선전효과가 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지도자는 자신뿐이라는 이미지를 국내에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시 실무회담 차원에서 이견을 좁히는 과정 없이 남·북·미 정상이 만나 선언에 가까운 얘기들을 주고받았다는 점도 우려를 야기하는 부분이다. 신범철 센터장은 “정상들이 만났으니 곧 실무회담 재개가 예상된다”면서도 “실제 실무회담에서는 얘기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하노이 2차 회담 모두 실무 차원의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톱다운’ 명목으로 진행하면서 실질적으로 비핵화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양자의 의견 합치가 없었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돼 왔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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