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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 속 그대 있으니… 나는 아직도 뜨겁다

입력 : 2019-06-28 01:00:00 수정 : 2019-06-27 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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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故 김진영의 ‘이별의 푸가’ / 2017년 ‘현대시학’에 연재하다 / 암 선고 받고 중단했던 글 등 / 이별에 관한 86개 글 묶어내 / ‘부재’를 황홀경으로 그려내며 / 동서양 많은 인용 구절 곱씹어

“부재의 눈물은 멈출 수가 없다. 흐르고 또 흐르기만 하다가 결국, 하회의 물길처럼,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고인다. 눈물을 흘릴수록 나는 비워지는 게 아니라 자꾸만 차올라서 마침내 눈물의 수조가 된다. 눈물은 더 흐르고 수조는 넘치고 나는 뗏목이 되어 넘쳐서 흐르는 눈물의 물길을 정처 없이 떠내려간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그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곳으로….”

모든 이별은 아프다. 깊고 오래된 사랑일수록 그 통증은 치유하기 어렵다. 어설픈 위로는 상처만 덧낼 뿐이다. 지난해 작고한 철학자 김진영(1952~2018)이 남긴 ‘이별의 푸가’(한겨레출판)는 이별에 관한 86개의 단상들로 채워져 있다. 이별의 본질과 그로 인한 ‘부재(不在)’에 대해 동서양의 많은 텍스트들을 곱씹어가며 깊이 사유하는 명편들이다.

 

“당신은 어떻게 내게 왔을까? 쿤데라는 말한다. 모든 사람의 만남은 떠내려옴과 건짐의 오래된 신화라고. 누군가가 대바구니에 실려 떠내려오고 누군가가 마침 그때 강가에 있다가 그 대바구니를 건진다. 우리도 그랬던 거야, 당신이 떠내려올 때 마침 나는 거기에 있었고, 내가 떠내려올 때 마침 거기에 당신이 있었던 거야.”

‘만남’은 우연의 신화인 것 같지만 필연이기도 하다고 ‘당신’은 말했지만, 새로운 만남을 위해 또 다른 우연을 기대하며 떠나가는 당신이 야속하다. ‘나’는 열패감에 빠진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없다. 다만 우리가 포기했을 뿐. 그 사실을 나는 숨길 수 없다.” 프루스트의 한탄처럼 “모든 것들은 세월이 데려간다. 과거가 된다. 그리고 과거는 환(幻)이 된다. 그때도, 그때의 나도 당신도 환이 된다.” 사랑이 끝났지만 떠나간 그 사람은 여전히 나의 타인이 아니다. “내 몸속에서 살아가는 장기, 숨 쉴 때마다, 먹을 때마다 내 몸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내 유기체의 한 부분이므로 추억의 습격이 적중하는 지점은 이 지점이다. …습격당하는 아픔, 그건 몸속에서 장기가 꼬이는 아픔이다. 그때 나는 바르트를 이해한다. ‘나는 그 사람이 아파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과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를 공부한 철학자답게 김진영의 독서 편력은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는 롤랑 바르트(1915~1980)를 자주 인용하거니와 ‘그 사람이 아프다’는 구절을 통해 이별 후 고통의 정점을 육체적인 ‘통점(痛點)’으로 받아들인다.

이별에 관한 성찰 끝에 ‘부재(不在)’를 ‘황홀경’으로 그려낸 철학자 김진영. 지난해 작고한 그는 “떠난 당신이 매번 수없이 다시 태어나 내게로 돌아오는 그 부재의 방을 어찌 떠날 수 있는지” 묻는다. 한겨레출판 제공

이별에 관한 생각들은 ‘결핍’에 이르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그는 “없음은 있음의 반대말이 아니며 없음은 있음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이나 영화나 광고 속 남과 여, 신문 안의 정치가들은 ‘있지만’ 내게는 ‘없는’ 존재다. “하지만 부재는 다르다. 부재는 있음과 떨어질 수 없도록 매어 있는 없음이다. …그리하여 내가 너무 아파하면서도 이별을 끝내지 못하는 건 당신의 없음 때문이 아니다. 그건 당신의 ‘부재’ 때문이다. 부재 속에 당신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당신의 없음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돌아보면 ‘당신’은 내 옆에 있을 때도 늘 어떤 결핍과 더불어 있었다. 온전히 가질 수 없는 당신이었기에, 오히려 그 결핍이 당신을 향해 애태우며 타오르게 했었다. 그래서 묻는다. “왜 나는 지금, 당신의 부재 앞에서, 다시 뜨겁게 타오르면 안 된다는 말인가? 왜 내가 당신의 뜨거운 부재와 차갑게 이별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재’가 곁에 없는 그 존재를 인지함으로써만 가능한 정서 상태라면 그 슬픔의 끝에는 ‘황홀경’이 있다고 죽은 철학자는 말한다. “슬픔의 끝에는 황홀경이 있다. 당신의 부재가 지극한 기쁨으로 타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동안의 모든 슬픔과 외로움과 애태움과 아픔이 빛나는 이 순간의 땔감들이었던 것처럼. 이별의 주체는 고행의 나무꾼이다. 이 찬란한 빛의 순간을 밝히는 땔감들을 구하려고 부재의 고통스러운 숲속을 헤매야 하는 고행의 나무꾼.”

단순히 몇 개의 인용문으로 ‘푸가’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이 책의 산문들을 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대시학’에 2017년 연재하다 암 선고를 받고 중단했던 글들과 고인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관련 내용을 합쳐서 묶어냈다. 사랑이 끝나면 죽음만이 남기 때문에 ‘당신’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고 그는 썼지만, 정작 자신은 ‘죽음의 제단에 제물로 바침을 당해도 저항하지 않는’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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